스토리1

저 눈처럼

체 게바라 2009. 1. 25. 21:50

 

저녁 7시경 밖으로 나오자 잠시 그쳤던 눈발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미 신발이 빠질 정도의 적설량을 기록해 구정을 전후하여 예년에 볼 수 없었던

눈 풍년을 맞이했지만 오늘도 눈은 그칠 줄을 모른다.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변한

아파트 주변을 걷다가 밖으로 나섰다. 구정이 내일이건만 호젖한 눈세상을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보였다. 영하 10도 전후의 추위였지만 다행이도 바람이

불지 않아 모자를 쓰고 모자 위에 다시 바람막이 모자를 쓰자 전혀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꽁꽁 얼어붇은 도로에는 차량의 흔적도 끊겨 가끔씩 조심조심 기어가듯 지나는

차량들 이외에는 눈맞이 하러 나온 나같은 사람들이 점령해버린 것 같았다.

 

사람들 발자국이 없는 도로를 따라가며 나는 내 어릴적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40여년 전, 그때는 춥기도 추웠지만, 겨울이면 눈은 시도때도 없이 많이도 왔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남한강은 12월 하순이면 얼어붙어 3월 초까지 그 두꺼운 얼음으로

우리를 강으로 유혹해 불러 냈었고, 외다리 스케이트를 들고 강의 얼음판으로 달려나가

끼니도 잊은채 신나게 겨울을 지쳤고, 발에 물이 차 추우면 강둑의 마른 풀과 나무를 주워

불을 지피며 집에서 호주머니에 가지고 나온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 요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었다. 그러다 스케이트질에 피곤해지면 만들어온 팽이를 얼음판위에 팽이채로 내쳐

돌리며 팽이싸움으로 신나기도 했었다.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도 지금은 호구지책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내 가까운 곳에 없다. 

상진이, 장구, 용흠이, 스님이 된 종원이, 스물 여덟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마감한

기훈이, 경구, 희성이, 그리고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많은 선, 후배들...

오늘밤의 눈을 밟으며 나는 많이도 옛날의 감상에 젖어 버렸다. 고향과 친구들, 부모님,

겨울, 고향의 강과 산들, 다시 찾아가면 그들은 아직도 거기에서 나를 반겨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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