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책의 제3의 길
-한국형 사회투자정책의 모색
양재진,이종태,정형선,김혜원(백산서당,2008)
한국 사회는 현재 전환기에 처해 있다. 1960년대부터 30여 년 간을 지탱해 왔던 발전국가적 경제사회정책은 1997년 IMF 경제위기로 종언을 고하고, 이후 지난 10년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하에 행해졌던 광범위한 시장주의적 개혁에 대한 회의가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확산되고 있다. 경제 성장은 예전과 같지 못하고, 비정규직을 비롯한 일자리 문제와 저출산,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은 우리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안기고 있다. 우리사회는 이제 어디를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 동안 우리는 미래사회의 경제사회 발전전략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산업화가 추동된 이후 정치적으로 만주와 반민주의 구도 하에 수많은 격변을 거치고, 민주화 이후에는 격렬한 선거경쟁을 겪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국가발전전략과 정책비전 수준에서의 구체적인 논쟁은 그리 많지 않았다.
IMF 경제위기 이후에 정치 사회의 주도권을 잡은 민주화 세력은 과거 권위주의적인 발전패러다임의 해체에 적극 나섰지만, 미국식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해야 하는 것인지, 유럽식 사회적 시장경제 내지 조정 시장경제를 지향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양자를 지양한 어떤 한국적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지에 대한 냉철한 고민과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의 새로운 변화, 그것도 우리사회의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새로운 전략과 정책적 선택이 하나둘 가시화 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우리 경제의 새로운 틀을 규정하는 한미 FTA의 타결과 자본시장통합법이 그렇고, 지식기반사회와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범국가적 대처 과정에서 강조되고 있는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 개념에 입각한 사회정책 또한 그렇다.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동반성장전략' 이나 '비전2030'의 핵심목표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조화이며, 이를 위해 경제를 개방 하면서 사회정책의 사회투자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의 경우 미국과 북한에 대한 관점이 좌와우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사회정책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좌ㆍ우 혹은 진보와 보수를 나누곤 한다. 진보개혁세력은 사회복지에 대해 적극적이고 국가역할 강화를 주문하고 있는 반면에 보수우파세력은 사회복지의 필요성을 인정 하면서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한다. 경제성장의 짐이 될까 걱정하고, 큰 정부가 방만하게 운영될 때의 비효율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더 큰 관심을 받는 교육도 마찬가지다. 한편에서는 '평준화'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선이므로 이를 훼손하는 어떠한 정책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나라 교육의 모든 문제는 '평준화'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사회정책에서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지점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차분하게 실사구시적 현실주의로 논의하기 보다는 이념적 선입견을 가지고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진보와 보수, 선과 악, 좌와우의 대립구도를 넘어서 사회정책에서 현실주의에 입각한 '실사구시적 한국형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다 많은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복지, 노동, 교육의 영역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필자들은 사회정책에 대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면서도, 국가의 책무 못지않게 개인의 책임도 강조하고, 결과의 평등 이전에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운동의 차원' 이라기보다는 '국가 경영자의 입장'에서 복지, 노동, 교육 등 사회정책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정책의 설계에 있어 세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실사구시적'으로 대안을 탐색하고 있다. 안으로는 인구 및 가족구조가 급변하고 지식기반경제와 양극화가 확대되는 상황, 밖으로는 세계화와 국가 간 경쟁이 격화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전통적인 복지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우리 현실'에 부합하는 사회정책을 설계 하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이념을 앞세우기 보다는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현실을 분석하고 대안 마련에 있어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인적자원의 개발'과 적극적 의미의 '기회의 균등'을 강조하는 '사회투자'라는 개념에 대해 전통적 좌파로부터는 결과의 평등을 우선시 하는 사회복지의 원칙을 저버린 신자유주의의 변형으로 비판 받는다. 또 우파로부터는 '무관심'과 함께 복지와 큰 정부를 합리화 하는 '포장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비판 받는다. 그러나 필자들은 변화된 환경에서 실사구시적으로 볼 때, '복지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은 사회투자 개념의 도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가족의 해체, 노동시장의 유연화, 지식기반경제의 확대, 그리고 세계화와 경쟁의 증대는 매우 급격하게 현실화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파생되거나 예상되는 문제는 과거 복지국가가 경험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 새로운 발전모델로 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신자유주의 발전모델이나 전통적인 복지국가 모델로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세계화의 충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인적 자원 개발과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투자'야 말로 새로운 성장과 사회정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한국식 제3의 길 발전모델'의 기본정책이 되어야 한다."
사회정책은 시장주의자와 복지주의자 사이에 접점을 찾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이 책은 산업사회와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이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사회투자 개념을 중심으로 시장과 복지의 접합점을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효율과 성장에 둔감한 복지주의자나 분배의 미덕에 둔감한 시장주의자에게 한국 사회정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 할 다양한 화두를 이 책은 던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투자정책이 시행되면 사회통합을 이루고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가? 사회투자정책이 과연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가? 사회투자정책의 소요재원을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가? 과연 사회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에 필요한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투자적 복지'가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에 대해 명확하게 답해줄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전통적주의적 사회복지 세력들의 비판, 즉 사회투자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사회투자국가론은 시장과 성장담론에 포획된 복지이념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대해 답해 주어야 한다.
이 책이 이러한 모든 물음에 답을 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의 필자들은 사회투자전략이 우리 사회미래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 속에 사회투자전략에 입각한 사회정책의 필요성과 그 정치 경제 사회적 의미, 그리고 복지, 노동, 교육 분야의 정책 설계 방향 등을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투자전략의 한계와 도전과제에 대한 고민도 함께 담고 있다.
이 책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부분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장은 사회투자의 개념과 등장 배경, 그리고 사회투자전략의 구체적 내용과 주요 정책과제를 다루고, 둘째 장은 영국과 덴마크의 사회투자전략과 대표적인 정책을 소개하고 양국의 경제사회적 성과와 시사점을 정리한다. 셋째 장은 우리나라에서 사회투자 전략에 입각한 사회정책의 필요성과 향후 역점을 두어야 하는 사안에 대해 논의한다. 둘째 부분은 총4장으로 구성되며, 각각 사회투자적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복지, 노동, 교육 분야 사회정책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향후 나아가야할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경우 서구 복지국가와 비교해 볼 때, 복지과잉 혹은 복지병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는 새로운 도전에 대면하고 있고, 서구 복지국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기존 사회정책의 틀을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현대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 사회가 후발주자의 이점을 살려 서국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고 미래를 조망하면서 사회정책을 설계 한다면, 경쟁력을 갖춘 역동적인 선진복지사회로의 진입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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