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내 나이 열한 살 초딩 4학년의 어느 날 이었다네. 동네 형뻘 되는 선배에게
(아마도 친구네집 고물상의 엿장수 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짱돌을 던져 눈에
큰 부상을 입히고, 뒷감당이 무서워 그 길로 뉘엿뉘엿 떨어지는 황혼을 벗 삼아
신작로를 따라 충주에 있는 큰 누님 댁으로 걸어걸어 피신했던 때, 이튿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끌려오던 날. 아버지의 회초리를 면죄부 삼아 엿장수 형네 집으로
사죄 다녀와서는 무릅 꿇은 나에게 아버님은 말씀하셨었지. "네 형상은 사람의
꼬라지를 하고 있어도 너는 사람이 아니다. 모름지기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이나 기쁨을 주지는 못 할망정 손해나 걱정꺼리를 끼쳐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너는 사람이 되기는 애시 당초 글러먹었다."
그날 이후 어느새 내 머리도 반백을 넘었다.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살아생전에 제 부모님의 가슴에 수없는 대못질을
해대며 불효한 나는 과연 사람일까?
아무래도 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네가 사람이 되기는 애시 당초 틀렸다던 아버님도, 자식의 불효에
아무 말 없이 부엌에 들어 가셔서 쓰디 쓴 눈물로 가슴을 진정시키시던 어머님도
이제는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
가끔씩, 정말 가끔씩 그분들이 그리워지면 철지난 사진첩을 넘기는 두 아이의 아버지인,
사람이 아닌 사내 한 놈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묻지 마라!
뜻하지 않게 찾아 왔다가는 그 빛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떠나버린
청춘처럼,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으면서 점점 더 돌아가신 부모님이 왜 가슴으로
들어오는지를.. 부모란 우리네 기억이란 머리속에 보관되어 있는 갈수록 빛이 바래는
흑백 사진일 뿐이라고, 그들의 처절했던 질곡의 실존과, 자신들의 전부였던 자식
사랑을 그렇게 가벼이 폄하하지 말자.
그러니 아버님, 어머님이여.
이미, 그대들의 얼굴, 목소리조차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자조하면서 기여코
당신들의 모든 기억들을 되살리게 되고, 마지막에는 보고 싶다는 한마디를 되 뇌이고
'지금 당신들이 내 곁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진부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부모들이여.
아직 나는 당신들의 그 무엇도 잊어버린 것이 없습니다.
친구들과 마눌과 내 아이들에게 묻노니-
내 나이 열한 살, 짱돌의 그날,
내 아버님의 말씀처럼 나는 그대들과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기쁨이나 웃음을 주기보다는 상처만을 안기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사랑한다면 -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베풀었듯 그렇게 사랑을 행할 일이다
(Keeps in you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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