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탐구 (칼 라이문트 포퍼지음, 박중서옮김, 칼라파고스)
사랑이란 많은 경우 회상 속에서, 고통스러운 후회 속에서 경험된다. 이때 후회는
또한 어떤 다짐이자 갱신이다. 우리는 후회 속에서 변하고 성장한다. 그러나 사랑은
자각만이 아니라 모든 자각은 언제나 그런 종류의 교정이나 갱신인지 모른다.
확고했던 믿음을 무너뜨리면서 솟아오르는 믿음, 견고했던 개념을 부수면서 태어나는
개념이 있을 때라냐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인생이 어떤 것인지 비로소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다. 시와 노래, 또는 기도는 떨리는 믿음, 개념의 전율이다.
칼 포퍼는 “과학적 이론의 참 모습이란 어떤 사실에 의해서 확증되거나 견고해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깨지고 부정되는 능력에 있다. 경험을 통해 논박할
수 없는 것은 과학적 이론이 될 수 없다. 과학적 앎은 반증 가능한 가설에 불과하다.
과학적 발견은 반증사례에 의거한 비판과 수정의 과정이다. 그것은 시행착오에 따른
오류의 교정과 제거의 과정과 같다. 그러므로 과학적 진리는 교정된 오류이자 반박되고
극복된 가설이다. 반박될 자세를 잊어버리거나 거부하는 이론, 다시 말해서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는 가설의 자격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이론은 독단에 불과하다.“
포퍼의 이런 인식론을 역사적 독단주의(역사주의)와 정치적 독단주의(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했다. 그가 세계적인 명성과 대중성을 얻은 것은 이때부터이고, 정확히
‘열린사회와 그 적들’(1945년 출간)이 출간되었을 때이다. 역사주의는 역사가 어떤 불변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전개된다는 믿음인데, 헤겔과 마르크스가 대표자로 지목된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의미와 목적을 전체의 실현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플라톤이
대표자로 거론된다. 역사주의와 전체주의는 역사 속에서 비판과 교정의 가능성을 전혀
허락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독단적 믿음이다.
우리네 인생도 역시 달라지는 맛에 사는지 모른다. 변하지 않는 삶이란 감옥과도
같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퍼의 자서전 ‘끝없는 탐구’(1974)는 반전을 거듭해온
포퍼의 철학적 인생에 대한 기록이다. 이 자서전 속에서 포퍼가 연출하는 것은 자신의
자연적인 삶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숙주로 생명을 얻은 어떤 사상의 역사이다. 이는
그의 철학이 수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무한한 존경에서 싹텄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물리적 세계와 심적 경험의 세계로부터 독립해 있는 이론의 세계
(문제와 가설적 이론이 자율적으로 경쟁하며 전개되는 제3의 무대)를 설정하는
그의 후기 철학과도 무관하지 않다. 비판적 합리주의라 불리는 그의 철학은
객관적 진리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나 포퍼가 생각하는 객관적 진리란 완전하거나 완전무결한 진리가 아니다.
비판적 합리주의에서는 완전무결하다는 것, 그래서 고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고발하고 심판해야 마땅한 죄악이다. 이론적 가설이든 사회적 제도든
언제든지 자유롭게 고칠 수 있을 때에만 의미 있고 따라서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포퍼가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에 그토록 신랄한 공격을 퍼부었고,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자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신봉자로써 거듭난 것은 이런
새로운 진리관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또한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런 저런
이론과 저작들이 태어나기까지 배후에 있었던 무수한 만남과 논쟁, 착상의 계기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특히 캠브리지 대학에서 강연할 때 그 자리에 있던
비트켄슈타인이 난로 부지깽이를 뒤흔들며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뛰쳐나가는 대목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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