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하루 앞둔 9월 24일, 밤 10시경
거제에서 새벽을 달려 온 피곤이 덕지덕지한 친구를 꼬드껴 강릉으로 가는
차를 몰았다. 밤은 가을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미 귀성객들의 전쟁이 끝난
고속도로는 이따금씩 마주치는, 혹은 우리 차를 추월하는 몇 대의 차량 이외에는
갑자기 인적이 끊겨 소원해진 산속 오솔길처럼 한가했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운전하는 녀석을 위해 스타벅스 오리지널을 2병이나 먹이면서
2시간 30분을 달려 강릉 사천의 아산병원 512호실로 들어섰다.
잠도 아닌 그저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있던 성홍이를 깨웠다.
녀석과 우린 유년을 서로 벌거벗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또는 이미 내 마음속에 들어 와 있는 그런 우정을 교류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잠시 잊었던 고향의 고만고만한 동창 같은 의미의 친구였지만,
녀석은 나이가 오십이 넘자, 갑자기 잃어버린 우리들의 고향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나에게로 다가온 녀석이었고, 이런 내 생각에 거제의 친구도 기꺼이 동의했었었다.
녀석의 부인이 병실로 들어왔고, 저간의 긴박했던 상황이 이어졌다.
뇌의 혈관이 꼬여 피가 상통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오른 쪽에 마비가 온, 그러니까
전형적인 동맥경화에 의한 반신마비 증상이었다. 오른 손은 전혀 감각이 상실되었고,
오른 다리는 겨우 30센티미터쯤 위로 올릴 수 있는 정도였으며,
대화는 정리된 의견을 말할 수 없이 어눌했으며, 녀석의 진짜 문제는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동의하거나 인정할 수 없는 내면의 심리적 문제였다.
추석 휴일이고, 야간이어 녀석의 주치의를 만나 의견을 들어볼 수는 없었지만
일단 위급한 상황은 넘긴 정도였고, 이제는 그의 의지가 현실을 극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인 것 같았다. 거제 친구와 나는 ‘이 악물고 병원에서 처방한 재활훈련에
전념할 것‘을 극구 주문하였고, 우리는 2시가 넘어 병원을 나섰다.
갑자기 삶이란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상투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다.
나무나 풀이 스스로 시드는 것은 겨울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잎을 떨구는 대신에 살 오른 뿌리와 줄기와 가지로
혹독한 겨울을 견뎌 낼 것이리라.
그러므로 저 들과 산의 잎들이 시들지 않으면 생명의 봄을 맞이할 수도,
다시 태어날 수도 없을 것이다.
돌아오는 밤의 여로에서 시월의 나무와 풀들은 그렇게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가 맞이하는 고통의 원인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시월, 성홍이의 증세는 많이 호전되어 마비되었던 오른 팔도 어깨 정도는 올리고
휠체어나 남의 도움 없이 힘들지만 스스로 걷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렇다. 삶이 남아 있는 한, 우리의 삶은 계속되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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