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통해 본 70년대 도시 빈민층의 삶

체 게바라 2006. 12. 2. 21:31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통해 본 1970년대 도시 빈민층의 삶


탱크 등 군대를 동원한 쿠테타를 통해 집권한 제3세계의 다른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박정희>도 경제를 성장시켜야 했다. 그것은 친일 군관 경력과 군 프락치 등 자신의 과거와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일거에 탱크라는 폭압으로 짓누르고 집권한 민주적 정당성의 결핍을 가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산업화는 농민과 노동자 수탈을 전제로 했다. 농민은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에 호응했으나 그 결과로 돌아 온 것은 철저한 배신이었다.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지만 농가 부채는 늘기만 했다. 그건 당연했다. 박정희의 산업화는 농촌을 죽여 도시를 살리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도시민들이 최저 생계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정부의 통제에 의해 싼 먹거리를 생산하여 공급한 농민들 덕분이었다.


도시는 이득을 봤을까? 도시 빈민과 빈곤 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6-70년대다. 당시 노동자들의 삶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 자세히 나온다. 그 책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건 노조 결성이나 공판 장면이 아니다. 난장이의 아내이자 삼남매의 어머니가 쓴 가계부다.


콩나물  50원

왜간장  120원

고등어 자반  150원

통일 밀쌀  3,800원

영희 티셔츠  900원

앞집 아이 교통 사고 문병  230원

새우젓  50원

방세  15,000원

영호 직장 동료 퇴직 송별비  500원

길 잃은 할머니  140원

방범비  50원

정부미  6,100원

영수 용돈  450원

두통약  100원

배추  220원

감자와 닭 내장  110원

치통약  120원

꽁치  180원

소금  100원

연탄  2,320원

밀가루  3,820원

영희 공장 친구들 와서  380원

라디오 수리 500원

불우 이웃 돕기 150원

두부 80원

오른쪽 어금니  1,500원

왼쪽 어금니  1,500원


(조세희, <난쏘공>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당시 도시 근로자의 한달 최저 생계비는 8만3천4백80원이었다. 난장이네 삼남매가 버는 총수입은 8만2백31원이었다. 이것저것 제하면 영호 어머니 손에 6만2천3백51원이 들어왔다. 최저 생계비에 못미치는 돈을 벌기 위해 삼남매가 죽어라고 일했지만 어머니는 늘 불안했다고 조세희는 썼다. 조세희 말마따나 그건 '생활'비가 아니라 '생존'비였다.


그 가계부에서 "앞집 아이 교통사고 문병 230원"과 "길 잃은 할머니 140원," 그리고 "불우이웃 돕기 150원"을 읽었을 때만 해도 그냥 가슴이 너무 아파 아려왔었다. 그러다가 "치통약 120원"과 맨 마지막의 "오른쪽 어금니 1,500원, 왼쪽 어금니 1,500원"을 읽을 때는 목젖이 울컥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삐어져 나왔더랬다. 썩어 들어가는 어금니의 통증, 그건 아는 사람은 안다. 그걸 쌈짓돈으로 버티다가 마침내 거액(?) 들여 뽑아냈던 것이다. 내가 책 읽다가 울어본 건 <난쏘공>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60년대와 70년대를 통해 이런 생활을 한 것은 난장이네 뿐이 아니다. <노동통계연감>에 보면 <난쏘공>이 출판된 1978년 노동자 수는 광공업과 서비스업만 630만 명이다. 일요일도 일하고 야근을 밥 먹듯 했지만 77퍼센트가 근로소득세를 낼 수 있는 수입이 안 되었다. 총 수입이 근로소득세에서 정한 면세점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78년 현재 약 4백80만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난장이네 처럼 살았다. 대한민국 국민의 거의 절반이 그렇게 살았다는 말이다. 요즘도 '빈부격차'나 '양극화'라는 말들을 쓰는 모양인데 당시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극한 상황에 부딪히면 누구나 그걸 이겨내려고 발버둥이라도 치는 법이다. 그건 당연하다. 잘 살아보자고 일도 하는 거니까. 그래서 노동조합 운동이 끓어올랐다. 그러나 정부의 공권력과 기업의 구사대는 노동조합을 빨갱이로 몰아 진압해 버리곤 했다. 1978년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4퍼센트였다. 노동자 네 명중 세 명이 나약한 노동조합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착취당했다.


허균의 표현을 빌면 "살이 발리고 뼈가 튀는" 상황이다. 이들은 정부와 기업에 맞서 싸울 힘도 없었고 원망을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한 채 중얼중얼 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노동자들이 돈보다 더 원하던 게 있었다. 인간대접이었다.


<난쏘공>에는 노동자 교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다. "취업 동기"로 "빈곤"을 꼽은 공원이 59퍼센트였다. 그런데 "원하는 직장의 조건"으로 "인간 대접 해 주는 직장"을 꼽은 공원이 72퍼센트였다. "돈 많이 주는 직장"을 원한 사람은 단 8퍼센트였다. 먹고 죽으려도 없는 돈보다 더 간절히 노동자들이 원했던 게 사람대접이었다는 말이다.


이 60~70년대를 통해 철저히 착취당한 계층은 노동자, 농민 등 사회의 기층 민중들이었다. 이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기업들은 군화 정부 관료들의 보호아래 땅 집고 헤엄치기 식의 부를 쌓아갔다. <난쏘공>은 이러한 70년대 이 나라 기층 민중들의 삶을 디테일하게 해부하여 보여준다. 일테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모두 <난쏘공>의 후예이자 자식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