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펌>‘비타 악티바’를 위한 나침반

체 게바라 2016. 11. 24. 16:05

ㆍ‘비타 악티바’를 위한 나침반


[권재원의내 인생의 책]④ 인간의 조건 | 한나 아렌트

 

1990년대, 나는 방황했다. 이른바 운동권 생활을 청산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현실주의자가 되어 이익과 출세를 추구할 수도 없었다. 이념의 시대는 갔지만 그렇다고 그저 먹고살기 바쁜 소시민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강력한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아렌트는 활동적인 삶(비타 악티바)을 생계를 위해 자원을 획득하는 노동(labor), 생계와 무관하지만 무엇인가 세상에 남기기 위한 창조인 작업(work), 그리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의사소통하면서 서로의 개성과 탁월성을 드러내는 행위(action)로 나누었다. 이 셋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삶, 그것이 바로 활동적인 삶이며 잘 사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고역으로 느끼는 까닭도 월급이 적거나 가난해서가 아니다. 단지 생계 유지를 위해 끝없이 반복되는 일을 해야 하고, 일이 끝난 뒤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에 치우쳐 작업과 행위가 증발된 것, 이것이 현대인의 병이며 고통의 근원이다.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지을 탁월한 무엇인가를 세상에 남기는 대신 똑같은 생산만을 반복해야 하는 노동에 치우친 삶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한다.

이 책 덕분에 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 설사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세상에 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작업’으로, 또 세상에 내 목소리를 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행위로서 글을 쓴 것이다. 또한 내가 교사로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책이기도 하다.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작업과 행위의 조건을 충족시켜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이 책 덕분에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판단할 준거가 생겼다. 나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세상 구성원으로서 뭔가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비타 악티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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