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육체에 대한 편견에 대하여

체 게바라 2015. 9. 8. 00:14

 

그대의 사상과 감수성 뒤에는 강력한 지배자가 있다.
그대가 모르는 그 현자의 이름은 '본래의 나'다.
그대의 육체 안에 그가 살고 있다.
그대의 육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국궁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회원들은 활을 잘 쏘는 그를 사범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이 즐기는 유일한 운동인 궁술을 연마할 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를 가르친 사범은 한 화살을 두 번 쏠 수 없으며, 활을 잘 쏘는 법을 알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과녁을 맞춘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릴 때까지, 우리 자신이 화살이 되고 활이 되고 목표점이 될 때까지 수백 수천 번을 다시 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물의 에너지가 우리의 움직임을 이끌어,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활시위를 놓게 되는 것이다. 즉 활대와 활시위와 내 손과 호흡이 하나인 상태가 될 때까지 끊임없는 연습으로 활시위를 당긴다는 것이다. 진정한 명인이란 어느 순간 내가 화살을 쏜다는 행위 자체도 잊어버리는 상태가 될 때, 활대를 떠난 화살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지닌 채 목표를 날아가는 상황에 이른 궁사를 명궁이라 한다. 즉, 궁사와 활과 화살과 과녁이 서로 독립된 존재가 아닌 하나를 이룬 궁사가 명궁인 것이다.

 

결국 진정한 자아는 이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있다는 니체의 말은 정신이란 본래의 나인 육체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계속한다.

 

육체는 하나의 거대한 이성이고,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여진 다양성이다. 육체는 또한 평화이며 가축의 무리이자 양치기와 같다. 형제여, 그대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그대의 작은 이성은 몸의 도구이며, 그대의 커다란 이성의 작은 도구이자 장난감이다. 이제 세계는 거대한 이성으로서의 육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의 복권(復權)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문학도들은 대부분 정신(이성)이야말로 자기 자신 그 자체이고, 지금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모습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종교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니체가 주장한 이성의 도구로서의 육체가 아닌 육체로부터 이성을 깊게 느끼고,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삶에 촛점을 맞춘다면 이성적 사유가 이론에만 그쳐 인간의 의미있는 삶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니체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오늘부터 당장 몸의 소리가 들려주는 진정한 자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삶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올 것이다. 조르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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