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장기 휴가 신청을 받아주지 않자 다니던 병원에 사표를 던지고 지 엄마의 반대에도 유럽 여행을 떠난지 1달여가 지났다. 첫 방문지였던 영국에서 보낸 메세지는 '아빠,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너무 늦게 알게 되네요. 지적으로 풍부하게 성장해서 갈테니 12주 후에 봐요.' 였다. 아이가 사표를 쓰고 집에 내려와 여행계획을 밝히자 나는 만류보다는 내 아이의 청춘이 그저 부럽기만 했었다. 벨기에 인근 국가와 독일과 체코에 이어 헝가리로 들어갔는지 도나우강 유람선에서 찍은 부다페스트 야경을 보내왔다.
왜 유럽인들이 화려한 고층빌딩이 즐비한 마천루群들에서 뽐내는 야경이 일품인 뉴욕이나 동경, 홍콩보다는 파리의 세느강변, 프라하, 부다페스트 야경을 더 아름답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사진은 수원 화성과 부다페스트 야경이다. 공통점은? 빛이 어둠을 쫓아내지 않고, 빛이 어둠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이들의 야경에는 대도시의 현란한 조명이 서로 경쟁하는 화려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을 배척하지 않음으로써 빛은 어둠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더 밝고 더 화려하지 않도록 어둠을 배려하고 더 나아가 빛이 어둠을 다정하게 꼭 껴안고 있었기에 나는 시간의 흐름도 잊고 한참을 쳐다보았고 아름답다는 감각이 온몸을 감싸는 황홀경에 넋을 잃은 순간이었다. 그것은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현란한 빛들의 화려함이라는 야경의 상식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순간이었다. 그것은 대도시의 야경처럼 단번에 이루어지는 압도적인 빛들의 향연이 아니라 가만히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야 비로소 몸으로 만날 수 있는 황홀경이었다. 그 야경은 자극적이고 역동적인 문명의 화려함이 빚어내는 쾌락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타자인 나마저도 설레이게 감싸안는 즐거움이었다.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하려 한다면 어둠이 밀려오기 전에 자리를 잡아야한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주위가 완전히 어둠에 묻히면 가급적 두 눈을 감으시기를. 이윽고 눈을 뜨면 조명이 두 눈에 들어오는 그 순간, 첫사랑처럼 아름다운 풍광이 우리의 가슴으로 들어올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