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화작(化作)의 표상인 조르바라는 사람

체 게바라 2013. 5. 26. 11:35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사람과 삶에 대한 앎에 주체할 수 없는 욕구에서 출발하여 

긴 시간 동안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인문학적 지식을 청하고 탐구했다. 

그러나 그 인문적 지식이 나의 실체적 삶에서는 구체화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전형적인 먹물, 말의 성찬에서 단 한발자욱도 전진하지 못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내 의구심은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왜 나는 지식을 請하고 있는가?

자유롭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는 자유에 대한 지식만을 쌓았을 뿐이지

정작 나 자신이 온전히 자유로운 삶의 지향으로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왜 나는 삶과 행복에 대한 지식을 구하고 있는가?

역시 행복한 삶에 대한 지식만을 탐하고 있었지 실질적 삶에서 구현되는 행복감은 도무지 체화되지 않았다.

 

그러한 절망적인 벽에서의 해방의 열쇠는 우습게도 역시 책을 통해서였다.

'그리스인 조르바'! 

내가 책이라는 앎과 지식의 형태로 수용하는 지은이들은 대개가 실질적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그들의 삶의 흔적이, 삶의 표현이 책을 통해서 구현된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고전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삶의 표현으로서 수용한 것이 아니라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받아들이려

기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말해 지은이들이 책이라는 지식은 문자로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고뇌, 번민,

갈증, 그리고 열정적이었던 땀을 상기하지 못하고 다만 그들의 문자에만 붙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실제적 삶은 실종되고 남겨진 지식이라는 고요와 창백한 추상에만 눈이 멀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지식일지언정 지혜라는 인격적 단계로 끌어 올리지 않는 한 영원히 괴리될 수밖에 없다는,

말의 성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한다는 아프지만 고마운 죽비를 조르바는 주었던 것이다.

 

인문학은 지식이 아니라 활동, 레알, 실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후배들에게 책을 머리로 읽지 말고, 머리로 이해하지 말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조르바처럼,

조르바를 닮으려 노력하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