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 김주대
살아 있을 동안 너는 어떤 이름으로도 살지 않았다
물결의 부드러운 허리를 물고 힘차게 지느러미를 흔들던 너는
푸른 파도였고
끝없는 바다였다
수평선 위로 튀어오르는
무명의 황홀한 빛이기도 하였고
어느날 명태, 라는 이름의 언어가 너의 깊은 눈에서 바다를 몰아내고 파도인 너를 음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후로 너의 입과 눈에서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였다
명태라는 이름은 너의 주검을 요리하고 싶은 욕망 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호명에는 음흉한 욕심이 감추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누가 벗이여, 라거나
사랑해, 라고 말하는 것이
그 죽음을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하고 싶다는 얘기는 아닐는지
- 김주대 시집 < 그리움의 넓이 > 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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