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부조리와 행복

체 게바라 2012. 9. 3. 00:34

 

젊은 날,

나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정색하고 내뱉는 말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아니 신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분류하는 중년이라는 기준인 30세 전에 반드시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나이든 사람들의 경험을 체화한 말이 어딘지 내겐 생경스러웠고 머리로 이해는 되지만 도대체 가슴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우기 장년의 삶이란 세상의 온갖 부조리한 상황을 자기 의지로 부딛혀서 극복했던 시간의 총합이 아니라, 웬지 세상의 부조리에 순응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조응한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행복 또한 마찬가지다. 행복한 삶이란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어렵고 현재적 체감의식이나 심리적 상태가 아닌 지나가버린 과거의 회고적 기억이거나 장차 기대되는 미래의 기대적 환상치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게 행복은 '그때 나는 행복했었구나' 라거나 '이러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는 시제적 의미를 가진다는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행복감을 느낄 때 그때는 이미 행복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바로 행복이란 의식의 대상으로서 지금 여기 내게 실존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도 행복에 대해 여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행복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삶이 고통이나 결핍에 놓여 신산스러운 상태가 아닌 삶에 대해 구체적 의식이 사라진 상태에서만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생각컨대 태초에 인간에게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 삶의 부조리성에 동의한다면 이 부조리와 행복이란 얼마나 형용모순이던가? 현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행복이나 꿈을 강조하는 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행복이나 꿈을 말하기 전에 인민의 삶을 포박하는 부조리한 제도와 관행의 개선을 행하여야 한다. 인간의 삶에서 형용모순이 존재하는 한, 행복이란 인연이 없다고 믿는 나는 틀림없는 비관주의자에 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