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전히 하늘은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보이는 사물 전체를 파리하게 마르게 하는 공간을 바라보면서 더도 덜도 말고 비가 좀 와 주었으면 참 좋겠구나 생각했다. 비가 오면 문득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비가 오니까 그냥 니 생각이 나더라..”라는 말을 꺼낼 것이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장 필립 뚜생의 ‘욕조’에 이런 글이 있었다. 비를 바라보는 첫 번째는 시선을 공간의 한 지점에 고정시키고 선택한 지점에 떨어지는 빗물의 연속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방식은 정신적으로 편안하나 운동의 목적성에 관한 어떠한 개념도 제공하지 않는다. 좀 더 시각의 유연성을 요하는 두 번째 방식은 한 번에 한 방울의 낙하를 시야에 들어왔을 때부터 땅 위에서 사라질 때까지 추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록 겉으로 보기엔 순간적이지만 운동이 본격적으로 부동성에 수렴하며, 따라서 가끔은 완만한 듯 하지만 운동은 물체를 계속하여 죽음, 즉 부동성으로 이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해서 비가 온다면 저녁을 먹은 후 아내 손을 잡고, 테라스에 젤라늄 꽃이 피어있는 까페의 창가 의자로 가서 앉아, 시각의 유연성을 요하는 두 번째 방식으로 빗방울을 바라보겠다는 상상을 했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볼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행복감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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