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구불, 저리 구불, 괴산 산막이 옛길
명산에 고승이 참선하던 큰 절이 있다면, 경관이 수려한 맑은 강가에는 선비가 학문을 논하고 시를 읊던 정자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10대가 아이돌 스타에 미치듯, 남송 시대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희를 따랐던 조선의 선비들은 전국 곳곳의 아름다운 강변에 무슨 무슨 '구곡(九曲)'이란 이름을 붙여놓았다. 주희가 1183년 푸젠성 우이산 계곡 강가를 우이구곡이라 부르며 그곳에 정사(精舍)를 짓고 학문을 닦았던 것을 심히 부러워한 까닭이다.
선비들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시류에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의 간난신고를 보며 인생과 학문의 길을 떠올렸다던가. 당시 선비들이 강을 곧게 펴는 데 충혈된 지금의 4대강 사업을 본다면 아마도 입에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가지 않을까.
남한강이 굽이도는 충청북도에만 해도 구곡이 22곳이나 되며, 그 가운데 9곳이 괴산군에 있다. '산막이 옛길'은 충북의 구곡 가운데서도 빼어나기로 으뜸을 다투는 연화구곡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본래는 구곡마다 한시가 음각되어 있었으나, 1952년 괴산수력발전소를 세우면서 몇 곳이 수몰되고 말았다. 마을 주민 노진규씨(75)에 따르면, 연화구곡은 드물게 상류에서 시작되는데 1곡에는 타밤이라고 부르는, 열대여섯 명은 족히 앉아서 놀 수 있는 너럭바위가 있다고 한다.
충북의 구곡 가운데 가장 빼어나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는 사오랑·동막·갈론·산막이·굴바위 등 다섯 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속리산에서 발원해 충주 단양을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괴강 상류 쪽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친 곳에 있는 마을이 산막이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소를 몰거나 다른 마을로 마실 가던 길이 산막이 길인데, 마을 인구가 4명(3가구)밖에 남지 않자 풀만 무성하게 되었다. 3년 전 괴산군이 정부 지원 63억원을 받아 이 길을 되살려 닦아 걷는 명소로 가꿔가는 중이다.
산막이 옛길은 괴산수력발전소 앞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수력발전소이다. 한국전쟁이 터진 뒤 북한이 압록강 수풍발전소 송전선을 끊어버리자 부랴부랴 착공해 1957년 완공했다. 노진규씨에 따르면 댐을 막아서 생긴 호수를 본래는 '칠성호'라고 불렀지만, 타지 사람들이 자꾸 '괴산호'라고 부르는 바람에 그렇게 굳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발전소 안에 들어가 보면 칠성제언(七星堤堰)이라고 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글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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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 옛길은 바로 이 괴산호, 아니 칠성호 주변을 따라간다. 예전에는 버드나무 우거진 강변 흙길이었으나 수몰된 뒤에는 아슬아슬한 바위 벼랑길이 되고 말았다. 술에 취하거나 한눈을 팔다가 떨어져 죽기도 하는 위험한 길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관광객의 안전을 고려해 자연 상태의 길을 최대한 살리지 못한 채 난간을 세우고 나무 데크를 깐 것이 아쉽다.
길이는 2.7㎞, 왕복하면 5.4㎞이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가족 단위로 걷기에 만만하다. 이 길의 가장 큰 강점은 걷기 전용 길이라는 것이다. 차는 물론이거니와 자전거도 들어오는 게 불가능하다. 길 주변을 둘러싼 깊은 산과 숲이 문명의 소음을 완벽히 물리쳐준다. 인터넷을 통해 소문이 나 주말에는 승용차가 130~150대, 관광버스가 15대 이상 몰려 주차 관리자가 진땀을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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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청 제공 산막이 옛길은 시종일관 괴산호를 굽어보며 걷는 길이다. 풍광이 아름다워 대부분 힘든 줄 모르고 걷는다. |
4월12일에는 평일인데도 어림잡아 100명 이상이 걷는 중이었다. 산수유는 이미 끝물이고, 군데군데 진달래가 피었다. 벚꽃은 막 봉오리를 터뜨리려고 한창 용을 쓰는 중이었다.
'사랑 나무'와 '출렁다리'도 볼거리
수력발전소 댐 밑 선착장까지 가는 길은 잘 포장되어 있었다. 1년 전만 해도 낚시꾼이 이곳까지 오려면 짐을 지고 1㎞ 이상 걸어서 올라와야 했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길 양쪽에 늦여름부터 별 같은 꽃을 피우는 산국화를 심느라 한창이었다.
선착장부터가 본격적으로 걷는 길이다. 마을 주민들이 열심히 야생화를 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길은 사람이 공을 많이 들인 태가 났다. 이것저것 한눈 팔 데가 많다.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가 한 나무처럼 합체된 연리지나무 세 그루가 먼저 사람을 반긴다. 연인이 함께 온다면 이곳에서 사진깨나 찍어대겠다.
고인돌이 아니라, 고인돌처럼 생긴 바위를 지나니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그리 높지 않아서 떨어져도 다칠 염려는 없겠지만, 사정없이 출렁대는 세 줄 다리를 걷노라면 제법 다리가 후들거린다. 생각보다 길고 흔들림이 심해 노인들은 건너기 전에 재고할 필요가 있다.
토끼·꿩·노루가 목을 축이던 노루샘을 지나니 연화담이라는 연못이다. 강이 빤히 내려다보이던 곳에 있던 천수답 자리이다. 발밑으로 큰 강이 흐르는데도 강물을 끌어올릴 방법이 없어서 하늘만 쳐다보며 농사짓던 논이다. 굳이 연못으로 개조하지 말고 그냥 논으로 놓아두었더라면 훨씬 훌륭한 구경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수십m 벼랑 위 '허공 전망대'
선비들이 남매바위 위에 지었던 정자 자리인 망세루에 오르자 호수를 둘러싼 비학봉·군자산·옥녀봉·아가봉이 좍 펼쳐진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유람선이 한가로이 호수에 가로누운 산 그림자를 헤쳐놓는다. 건너편에는 낚시광인 배우 이덕화씨가 즐겨 찾는다는 산장이 보인다. 거기에는 개그 커플 이봉원·박미선 씨의 사인도 있다나, 어떻다나.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전망대를 흉내 낸, 수십m 허공에 걸린 유리 바닥 스릴 데크를 구경하고, 가재 연못을 지나니 종착지인 선착장이다. 선착장 너머로 버드나무 숲이 우거진 습지가 발달했지만 그쪽으로는 아직 길이 뚫리지 않았다.
목을 축일 막걸리나 음료수, 허기를 달랠 잔치국수나 김치전 따위를 파는 주막이 몇 채 있다. 이곳에서 다리를 쉬고 느긋하게 온 길을 되짚어도 되고 편도 5000원(성인) 하는 유람선을 타고 돌아가도 된다. 유람선을 타면 15분 동안 이곳 주민인 선장의 구수한 입담도 즐길 수 있다.
먹을거리
자연산 올갱이를 팔팔 끓여서
예전에 남한강 수계에서 흔한 먹을거리 중의 하나가 올갱이였다. 강가에 나가 잠시만 허리를 괴롭히면 한 바가지씩 주워서 돌아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경남에서는 고둥, 전라도에서는 대사리라고도 부르는 이 조그만 연체동물의 표준어 이름은 다슬기이다. 수고에 비해 입에 들어오는 것은 적지만 삶아서 옷핀으로 빼 먹어도, 데쳐서 무쳐 먹어도, 해장국이나 된장국을 끓여 먹어도 맛있으므로 오랫동안 서민들과 함께해온 음식이다.
남획으로 어느샌가 자연산 올갱이는 씨가 말랐다. 남한강변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한두 마리 발견할 뿐이다. 거의 유일하게 자연산 올갱이가 남아난 곳이 바로 이 산막이 옛길 근처이다. 이곳 올갱이는 특이하게도 수력발전소 덕분에 살아남았다. 평소 수력발전소의 수문을 한두 곳만 열어놓아도 그 밑에는 접근하기 힘들어 다슬기가 안심하고 자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그러다 가끔 수문을 모두 닫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마을 사람들에게 다슬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이다.
수문을 닫아 댐 밑의 물이 마르면 다슬기뿐만 아니라 쏘가리나 메기·빠가사리·붕어 등도, 손으로 주워 담아도 될 만큼 득시글거린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민물매운탕은 올갱이 해장국(사진)과 더불어 맛 좋고 고기가 푸짐하기로 이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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