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은 눈물과 욕망의 분비물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몸 둘 곳 없게 했다. 매서운 추위가 다가올수록 움츠러들고,
삭풍과 함께 눈이 내리면 겨울잠에 들어가는 동물들처럼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겨울의 나무들은 제 운명의 자리로 돌아가
혼자서 겨울을 날 채비를 했다.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앙상한
가지만으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은 얼마나 부러운 대상들이었던가?
나는 그런 자연을 해독하거나 자연의 내 자아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은 냉정한 단절이며, 차단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늘 그 바깥쪽을 서성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생명의 봄은 모든 사물을 온통 드러나게 했다.
봄의 도드라지는 색깔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 속에서 개별적이었으며,
고유한 그 운명의 빛깔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 보였다.
눈들이 녹아 흐르고, 봄비가 내려 개울들은 부산했다.
물은 흘러가고, 데려가지만 흐르는 것, 사라지는 것들 위에
우뚝 솟은 산 그림자는 흐르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흐르는 물이나 흐르지 않고 거기 서있는 산은
다만 그들을 따라가거나 내재화하지 못하는 나는 객관화된
나를 멍하니 바라다볼 뿐, 내 자신을 달랠 길이 없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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