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5시간 19분의 달인,고 김대중대통령

체 게바라 2010. 2. 4. 00:41

 

 

 

5시간 19분 동안 국회 연설을 한 주인공이다. 아무리 수다스러운 사람이라도 5시간 넘게 혼자 떠들 수 있을까. 아무리 청중의 반응이 우호적이라도 그렇게 장시간 연설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정적이 야유를 퍼붓는데다 의장이 말 못하게 자꾸 제지한다면, 청산유수처럼 정돈된 정치 연설을, 서울에서 부산까지 승용차로 달리는 시간만큼 한다면.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말할 수 있겠지?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1964년 4월20일 당시 제6대 국회의원, 초선 의원이었던 때의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일 때문에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때 무슨 일 때문에 그런 장시간 연설을 했을까. 발단은 민주당 김준연 의원이 국회에서 “박정희 정권이 비밀 회담을 갖고 일본으로부터 비자금 1억3천만 달러를 받았다”고 주장한데서 비롯됐다. 이 주장은 과거 일제 강점기에 국민들이 겪은 고초를 대가로 자기들 주머니 속에 챙겼다는 얘기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야기했다. 혼비백산한 정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국회에다가 ‘이 사람 붙잡아갈까 하니 허락해 달라’며 구속동의안을 내놓는다. 여당 출신으로서 이효상 국회의장은 예외 없이, 회기 마지막 날, 구속동의안을 전격적으로 상정해버린다. 상정하면 어떻게 되겠나? 당연히 여당 의원이 다수인 상황에서 통과되는 건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야당이 이걸 통과시키도록 내버려두겠나? 결사 저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당시 국회법 60조 1항을 보면 ‘위원은 위원회에서 동일 의제에 대하여 회수 및 시간 등에 제한 없이 발언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야당이 “이거 처리 못 시켜!” 이렇게 마음 먹고, 표결 직전에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회기를 넘길 때가지 마이크대를 붙잡고 안 놓으면 법안을 자동 폐기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걸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라는 뜻을 담은 ‘필리버스터’라고 한다. 야당은 이걸로 김준연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안 처리를 막으려고 했다. 그렇다면 누가 나가서 할 것인가. 큰 고민이 필요 없었다. 김대중 의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시간 19분 내내 연설했을까. 아니다. 중간에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러나 발언 기회는 유효하다.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이걸 빌미로 연설을 끊을 수도 없다. 자칫 법을 어기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효상 의장, 화장실을 다녀온 김대중 의원에게 “의장 직권이다. 김대중 의원은 그만 말하고 내려가라”라고 호령했다. 그러자 김대중 의원, “아니, 그런 게 어디 있느냐. 이건 국회법 위반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이효상 의장, “안 내려갈 건가? 마이크 꺼버리겠다”라고 했다. 실제로 마이크는 꺼졌다.

 

야당 의원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그래서 야당 의원 21명이 단상 위에 올라가 국회의장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항의한 21명의 의원 중에는, 후에 대통령이 된 김영삼 의원도 있었다. 이때만 해도 김대중 김영삼 두 사람은 동지 사이였다. 이렇게 항의가 계속되니까 여당 의원들도 뛰쳐나와 야당 의원과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갔다. 이때 여당 돌격대원 가운데 한 사람이, 훗날,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둔 차지철 의원이었다. 차지철 의원은 당시 “이럴 거면 국회 해산해버려!”라고 큰소리쳤다. 그러자 야당 의원석에서는 “왜? 또 쿠데타하고 싶나?” 이런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국회의장, 누구 눈치를 봤던 것일까.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효상 의장, 처음에는 야당 의원들과 잘 지내는가 싶더니, 김준연 의원 구속동의안 처리 과정에서는 국회의장이 아니라 공화당 의장이 돼 버렸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처신이 고르지 못했다. 굴곡이 심한 이유는, 아무래도 자신의 일천한 정치적 기반 때문이리라.

 

통상 국회의장은 다선에다가 국회의원들의 존경을 받는 경륜과 인덕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효상 의장은 좀 달랐다. 처음에 국회의장 될 때 야당은 물론, 야당 쪽에서 ‘저 사람 누구야’ 이런 반응을 얻었던 것이다. 사실 이때만 해도 이효상 의장은 공화당에 입당한지 얼마 안 됐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국회의장이 됐을까. 1963년 대선 때 그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이런 말을 했다. "대구는 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대한민국 임금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 고장 출신의 박정희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 임금님으로 모시자"라고 한 것이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을 임금님으로 아시는 분이, 또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분이 국회의장이 된 것이다.

 

다시 당시 회의장으로 돌아가본다. 야당 의원들의 강력한 저지에 눌려 결국 이효상 의장, 백기를 들었다. 회기가 끝날 시점인 오후 6시가 넘어갈 때까지 김대중 의원의 발언을 제지하지 못했다. 신이 난 김대중 의원은 회기를 넘겨서까지 연설했다고 한다. 회의가 시작된 시점은 2시 36분. 끝난 시간은 7시 55분이었다. 김대중 의원은 이때부터 야당의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고, 그것을 기반으로 1971년 대선 후보에 오른다. 그리고 납치, 구속, 수감, 사형 선고 같은 숱한 탄압을 이겨냈고, 이를 지켜본 국민의 선택으로 대한민국 제 15 대 대통령으로 오르게 된다. 이 사건은 말 그대로 사건이면서 정치인 김대중의 존재가치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례라 하겠다.

 

한편 박정희 정권은 이런 일이 또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1973년 국회의원 발언 시간을 제한하는 국회법을 신설했다. 우리 국회는 현재, 의원의 의사진행 발언을 15분 이내로 하고, 동일의제 발언은 2건으로 제한해 사실상 필리버스터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대중 의원의 1964년 필리버스터가 우리 헌정 역사상 가장 긴 발언일까. 그렇지 않다. 헌정사상 본회의 발언 최장 기록은 1969년 박한상 의원의 3선 개헌 반대 발언이다. 참고로, 3선 개헌은 대통령을 두 번 밖에 할 수 없는 헌법을 뜯어고쳐 세 번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해서 세 번 대통령을 했다. 그리고 물러났느냐. 아니다. 또 헌법을 바꿔서 본인이 그만두지 않는 이상 영원히 권좌를 지킬 수 있는 종신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이걸 반대하는 박한상 의원의 발언 시간은 10시간 5분이었다. 1969년 8월 29일 밤 11시10분 국회 법사위에서 마이크를 잡았는데, 다음날 아침 9시10분까지 장장 10시간 동안 발언한 것이다. 3선 개헌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그의 발언 중에 속기사 60여명이 동원됐고, 공화당 의원들은 회의장에서 잠을 잤다. 우리 의정사에서 의사진행방해의 최장기록이다.

 

그러나 박한상 의원 보다 김대중 의원의 5시간대 연설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이건 성공한 필리버스터였거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이 있었는데, 그런 이유로 ‘성공한 필리버스터만 기록에 남는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지는 알 수 없다.

 

국회 연설은 아니라도 예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도 꽤 장시간 연설한 기록이 있다. 2007년 6월 2일. 일요일이었지? 참여정부 평가포럼 주최의 행사였다. 이 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무려 4시간 15분 동안 강연했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을 비난했고, 정권교체 불가 입장을 완곡하게 밝힌 당시 발언. 큰 정치적 파장을 낳았다.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정책을 이야기하면서 “어디 정신 제대로 박힌 기업인이 거기다 투자하겠냐”라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도 필리버스터 제도가 있을까. 필리버스터가 원래는 해적 또는 약탈자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경우, 원칙적으로 발언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상ㆍ하원에서 다 허용되던 필리버스터를 상원에 국한하고,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토론을 종결시킬 수 있도록 했다. 필리버스터를 남용할 수 없도록 한 장치를 만든 거지. 그러나 완전히 없애 버린 나라를 찾기 어렵다. 한편 오바마 미국 대통령 책에는 “필리버스터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는 지적이 있다. 보수적인 미국 남부 출신 상원 의원들이 한 세기동안이나 “흑인 차별, 좀 있으면 어떤가” 이런 식의 억지를 펴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1957년에는 민권법 통과를 막기 위해 24시간18분 동안 발언한 상원 의원의 일화도 있다. 24시간18분. 말하자면 이게 세계신기록이 되겠지?

 

필리버스터, 우리 국회에서도 이제 다시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당이 강행 처리할 움직임만 보이면 합법적 저지 수단이 전혀 없는 야당으로서는 몸으로 막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늘 국회는 난장판이 된다. 그래서 민주당 5선의 박상천 의원이 '타협형 국회법' 개정을 제안하면서 필리버스터 도입을 주장했다. 이미 한나라당 민주당 양당의 홍준표, 원혜영 의원도 원내대표 시절 필리버스터의 필요성을 역설한 상황이다.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필리버스터가 도입돼도 5시간, 10시간 연설을 할 의원이 있을지 의문이다. 몸싸움하는 걸로 보면 체력은 꽤나 있는 것 같은데, 소통하는 모양새를 보니 영 아니고 따라서 이렇게 일천한 말솜씨로 과연 몇 분이나 떠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이 말이다

출처:http://newsti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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