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벼랑에 지는 꽃/도종환

체 게바라 2009. 6. 7. 17:01

 

벼랑에 지는 꽃

                     -도 종 환-

바람도 없는 허공에
들찔레꽃 하얀 잎 하나 혼자 지고 있네요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는 없어
벼랑 끝에 한 생애를 던진 저 한 점 꽃잎의 영혼을
하늘이여,당신의 두 팔로 받아 안아 주소서

그의 좌절은 나의 좌절
그의 한계는 이 나라의 한계
그의 굴욕은 우리들의 굴욕
그의 자존심은 우리 모두의 자존심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으며 뉘우치노니

그의 늑골에 금이 가는 것은
권위주의를 벗으려는 노력에 금이 가는 것
그의 정강이뼈가 부서지는 것은
지역주의를 깨보려던 시도가 부서지는 것
그가 피흘리며 쓰러지는 것은
정의로운 역사를 세우려던 몸부림이 쓰러지는 것
그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균형발전,평화로운 나라를 향한
간절한 소망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이므로
역사여,당신의 가슴으로
이 조각난 육신을 받아 안아 주소서

다시는 손녀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논길을 달리는
대통령을 가질 수 없을 지 모르니
밀집모자를 쓰고 구멍가게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무는
소탈한 우리의 대통령을 만나지 못할 지 모르니

그가 꿈꾸던 아름다운 가치들이
모조리 불에 타
허망한 연기,한 주먹의 재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으니
잔혹한 시대여,그를 우리의 벗으로 돌려주소서

그를 조롱하고 손가락질 하던 야만의 시간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습니까
그를업신여기고 비아냥거리던 비겁한 권력들은
지금 무슨 혀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가장 뜨거웠으나 가장 외로웠던 그
가장 도전적이었으나 가장 힘들어 했던 그를
혼자 벼랑으로 걸어가게 한 이 누구였을까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뉘우치는 눈물 발등을 적시지만
이제 어디서 그를 만나야 합니까

이 땅의 슬픈 역사여,
아아, 대한민국이여 !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6.9 작가선언  (0) 2009.06.09
정치적 포스트모더니스트로서의 노무현  (0) 2009.06.08
우리 모두 노무현이 되자!  (0) 2009.06.06
이명박씨의 형용모순  (0) 2009.06.05
<펌>닭똥과 이슬  (0) 2009.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