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시대정신과 역사의 전환점에 대하여

체 게바라 2009. 3. 22. 23:08

 

1. 시대정신이란 무엇인가.

 

시대정신! 나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묘한 전율을 느꼈다. 모든 학문의 아버지가 ‘철학’(哲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사물들 사이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관통하고 있는 질서를 발견한 느낌 같은 것이었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나침판’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나침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현실에서는 그 나침판이 가리키는 방향을 제대로 알기가 어려웠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말은 독일의 J.G.헤르더가 1769년에 맨 처음 사용했다고 하며, J.W.괴테도 《파우스트》 속에서 이 말을 썼으며, 시대정신을 역사의 과정과 결부시켜 그것을 개개의 인간정신을 넘어선 보편적 정신세계가 역사 속에서 자기를 전개시켜나가는 각 과정에서 취하는 형태로 본 것이 G.W.F.헤겔이었다. 헤겔은 그것을 또한 민족정신과 결부시켜 동양 ·그리스 ·로마 ·게르만의 4단계로 구분하였다. 또한 A.콩트는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기까지의 개인의 정신적 성장과정과 비교하여 고대에서 근세까지의 정신의 발전단계를 신학적 ·형이상학적 ·실증적 3단계로 나누었는데, 이것도 시대정신을 구분하는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유물사관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대정신은 이데올로기로서 각 시대의 경제적 구조에 의존하게 된다”고 정리하고 있다.

 

시대정신을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된 인간의 정신적 태도, 양식 또는 이념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더욱 간단하게 말한다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최고가치가 아닐까한다. 한 시대의 주된 흐름으로, 흔히 말하는 민심(民心)하고는 좀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첫째, 민심은 시대정신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아주 짧은 시기의 여론이고, 둘째, 민심은 흐름의 유동성이 크다는 점, 셋째, 민심은 정의(正義)의 개념이 비교적 덜 수용되어있는 범주라는 점에서 시대정신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요즘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시대구분에 따른 해석을 도입해 보면, 쉽게 이해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1945에서 60년까지를 건국의 시대로, 1960에서 87년까지를 산업화의 시대로, 1987년에서 2007년까지를 민주화의 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구분이 자의적이고 기계적이지만, 시대정신을 설명하는 데는 상당히 효율적이다. 지나온 역사에서 그 시대의 과제를 유추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게 있다. 시대정신을 현재적 관점에서는 정리해내기가 쉽지 않지만, 사후적 결과를 가지고 해석하면 대체로 명확해 진다.

 

요즘은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그 결과를 시대정신과 등치시키기도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의 투표행위를 통해서 그 시대의 권력을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시대정신은 과거에 대한 반성과 현재의 의무, 그리고 미래의 과제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최고의 가치인데, 투표결과와 곧바로 연결할 때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주로 과거 회고적 투표가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미래적 가치를 포함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닐 때도 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선거는 시대의 구분과 시대정신을 추적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따라서 2002년 대통령 선거와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시대정신과 민주화시대의 마무리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읽어 보자.

 

2. 노무현의 집권과 시대정신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킨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시대정신이라는 말은 꽤나 추상적인 말이다. 그래서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1987년 이후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내세운 선거 슬로건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강조했던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한국사회”였다. 이것은 국민 누구나 일상에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반칙과 특권’을 철저히 응징하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해 달라는 뜻이었다. 2002년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주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정신을 관철시키라는 주문은 고객을 만족시키기는 무척 어려운 과제임을 다들 잘 몰랐다. 노무현은 제왕적 시스템을 혁파하고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해결사를 요구하는 국민의 바람으로 등장한 것이다. 당선된 후, 노무현 정부가 ‘참여정부’를 표방했는데, 이것은 김대중 정부의 ‘국민의 정부’라는 민주주의 주체와 ‘참여정부’라는 민주주의 방법, 형식을 정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시대정신을 표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은 ‘민주화의 제도적 완성’을 뜻한다. ‘민주화의 제도적 완성’은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엄청난 역사적 난제다. 말로는 간단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지만, 구체적으로 실현가능하게 하려면, 혁명의 수준에서 진행되는 대대적인 개혁을 강제해야 가능할 것이다. 노무현정부가 집권하는 기간 동안, 민주화의 제도적 완성과 정치개혁의 과제는 시간적 흐름에 따라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슈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로 ‘원칙과 상식의 사회’는 민주화의 시대로 통해 발현될 것이라고 믿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대정신과 관련해서 ‘새로운 정치’를 열겠다고 국민에서 약속했다.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거구호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정치는 ‘정치개혁’으로 상징되었다. 당시의 정치개혁을 이루는 핵심은 한국정치를 왜곡해왔던 기득권구조의 철폐였다. 노무현 정부는 계승적 측면에서 보면, 김대중 2기 정부에 해당하는 민주정부였고, 혁신의 측면에서 보면, 과거의 구태정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를 여는 것이었다. 정치권 내부에서 일차적으로 떠오른 핵심의제는 ‘제왕적 권력 시스템 혁파’였다. 시대정신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 전략과 방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제왕적 시스템의 청산, 즉 권위주의 체제 청산을 위한 주요방향을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으로 보았다. 그래서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 권력자체가 권위주의 해체를 몸소 실천하는 방식으로 정경유착과 권언유착을 중단을 공언하고 권력카르텔 해체를 선언했다. 또한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감사원 등 이른바 5대 권력기관을 “국민의 품에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정치권력의 불개입’을 선언했다.

 

권위주의 체계인 제왕적 시스템 극복은 제도적 장치와 광범한 국민적 참여라는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압력으로 개혁적 조치들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하는데 대통령 본인이 권력불개입을 실천하면, 권력기관이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발상은 구조적인 인식이 결여된 단편적 발상이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권력기관을 문민 통제하라고 위임해 주었다. 위임한 권력을 통해 권력기관을 통제하기 어렵다면, 당연히 국민의 참여를 통한 직접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설계변경을 했어야 했다. 제왕적 권위주의 체제라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주목하지 못했다. 제왕적 시스템이 있어야 한국사회는 돌아간다. 제왕적 권력으로 사람들의 갈등과 이해를 강제적으로 조정, 통제할 수 있는데, 권력을 놓으면, 극단적 주장과 행동을 제어할 방법을 상실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4대 권력을 국민의 품에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권위주의 권력을 포기했지만, 대한민국은 제왕적 권위주의 시스템으로 50년 이상 운영되어왔다. 50년 체제로 굳어온 실제와 실물은 권위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는 현실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손을 놓아버리면서 나타난 부작용은 너무나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초기 개혁에 대해 ‘제왕적 권력’을 활용하여 ‘제왕적 시스템’을 혁파했었어야 했다는 주장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일견 동의가 된다. 한국사회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이 구조적 문제까지 통찰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리가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최고의 성과로 평가받는 ‘권위주의 청산(정치적 중립)’이 이명박 정부의 탄생과 함께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으로 탈권위주의 의지는 보여주었지만, 국민들이 참여하는 검찰개혁이라는 제도적 접근은 없었다. 단순화하면, 1회성 이벤트처럼 되어 버렸다. 대통령으로서는 황금 같은 집권 1년을 활용하여 시대적 과제인 목표물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집중전략을 펼쳤어야 했다. 물론 집권 1년 동안 거대한 다수당 한나라당이 집권야당(?)으로 버티고 있었다는 객관적 현실이 존재한다. 그러나 정치 전략을 올바로 세우고, 실천할 인재를 배치하여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실무적, 실천적 활동은 별로 없었다. 국민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동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다. 기득권 세력은 곳곳에서 시비를 걸었고 다수의 힘으로 탄핵을 시도하여 권력을 되찾으려 했다. 기득권 세력이 연합하여 대통령을 탄핵하는 초유의 현상을 국민의 눈으로 목도하고서야 시대적 과제로 되돌아 왔다. 국민은 야당을 철저히 심판했고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3. 시대정신의 대전환

 

노무현의 당선은 분명 ‘민주화의 제도적 문화적 완성’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안타깝게도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일이 일어났다. 집권2년차를 지나 3년차로 접어드는 시점부터 혼동의 시대로 들어갔다. 노무현정부의 정치적 실패에서는 비롯되었을 수도 있고, 국민의 생활상의 어려움 때문에 상황적으로 일어났을 수도 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대한 갈망에서 새로운 요구로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아무튼 2005년을 맞이하면서 이러한 큰 흐름이 대전환이 일어난 이유를 추적해 보자.

 

첫째, 시대정신의 ‘해소론’이다. ‘민주화의 제도적 문화적 완성’이라는 임무는 결과적으로 노무현의 당선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말았다는 주장이다. 역설적으로 민주화의 성취(노무현의 당선)를 통한 민주화의 제도적 완성으로 인식(해소)했다는 것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시대정신이 불과 5년 후인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유를 찾아야 한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이어 2004년 총선에서 의회권력의 교체가 일어났다. 야당에 의한 대통령 탄핵은 민주화를 전면 부정하는 반혁명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국민들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철저히 심판한 것이었다. 정치권력의 교체에서 의회권력의 교체까지 실현시켜준 국민들의 바람은 민주화의 제도적 완성을 통한 새로운 사회로 전진하라는 것이었다. 2004년 총선을 통해 화려한 불꽃놀이가 벌어진 민주화 축제의 밤이었다.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음날 아침부터 생계의 일자리로 돌아가야 하듯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2004년 정기국회에서 정치개혁 입법을 실패하면서 아쉽게도 정치개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어젯밤에 치룬 ‘민주화 축제(?)’의 피날레는 화려하게 꽃피지 못했지만, 오늘 아침부터는 땟거리를 찾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축제의 여운마저 없어지는 시점에서 한국사회 구조에서 오는 격렬한 압력에 분노의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민주화는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위해 버리는 순간, 민주화의 시대정신은 해소된 것이다.

 

둘째, 현실적 상황에 따른 ‘자연발생론’이다. 2004년 정치적 개혁에서 성과가 없자 이에 실망한 국민들은 2005년부터는 정치적 갈등보다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다. IMF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심화되기 시작한 경제의 이중구조에서 비롯되는 모순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사회곳곳에서 양극화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등장하면서 중산층과 서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넘어온 신용카드에 의한 신용불량자 문제를 과단성 있게 해결하지 못하자 서민경제에서 소비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경제가 활성화되고 거대할인점(마트)이 들어서면서 주거지에 근거한 영세자영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엎친 데 덮친다고, 한국 사람에게 가장 민감한 주거문제인 부동산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수출경제 위주의 산업체계에서 각종 경제 수치는 나쁜 편이 아니었지만, 내수가 위축되었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제가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정치적 측면에 초점이 있었던 시대적 과제가 경제적 측면의 과제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른바 구조적 발생론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의 대전환은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잘 몰랐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시대정신의 대전환이라는 결론도 사후 결과적 평가에 의존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아무튼 시대정신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서도 민주화를 주도한 진보개혁세력은 여전히 관성에 따라 다음 단계인 ‘실질적 민주주의 쟁취’라고 규정하고 정치적 요구투쟁으로 일관해 왔다. 최장집 교수의 주장도 이러한 측면에서 2007년의 대선에서 진보개혁세력이 참패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4. 지금의 한국사회는 역사적 전환기인가?

 

나는 <로마인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의 결론을 지도자가 되려면 시대정신을 꿰뚫어야 한다는 것으로 읽었다. 로마의 역사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시대를 지내면서 로마는 공화정에서 새로운 제정(帝政), 황제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로마라는 도시가 탄생하고 700여년이 지나는 시점(기원전 27년)에서 새로운 시대로 전환이 일어났다. 현대의 의미에서 공화정을 더 높은 가치로 존중할지 모르지만, 당시의 시대에서는 제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로마를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과정에서 카이사르는 왕이 되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고 공화정을 수호하려는 사람들에게 암살을 당했다. 카이사르 사후, 유언장의 공개로 알게 된 양자인 18살의 아우구스투스는 그 후 60년 동안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치열하고 꼼꼼하게 새로운 제정의 시대를 열었다. 그는 시대적 전환에 따른 시대정신을 잊지 않았다.

 

한국 현대사를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로 3개의 단계로 나누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현재의 단계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87년 민주화운동의 20년을 지나는 시점에서 맞이한 대통령선거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이지만, 앞에서 살펴본 대로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도 마찬가지였고, 2007년의 대통령선거에서 대참패는 새로운 시대적 전환기를 설정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명박의 당선을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문제 해결로 한정하여 의미를 부여하면, 표피적으로는 맞을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명박 정부의 실패도 예견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민주화 20년을 경과하면서 민주화 시대가 마감하고 있는 동시에 한국 근대화 60년이 마감하고 있는 역사적 대전환기이다. 이명박의 정치형태로 보고, 지금의 시기를 새로운 민주주의를 시작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가 있다고 설정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보면, 60년이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통과해 온 근대화의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근대화 다음의 시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유주의자 일부에서 ‘선진화’라는 담론을 앞세우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용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알맹이, 즉 내용의 문제일 것이다. 근대화의 시대에서도 산업화의 내용과 민주화의 내용이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했듯이, 근대화 이후의 시대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든 관계없이 추구하는 내용의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정치적 리더와 세력이 집권할 것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시대정신은 크게 2개의 흐름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적 흐름과 정신적 흐름이다. 실리의 추구와 가치의 추구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흐름 모두 한국사회를 발전시켜온 주요한 동력이다. 각각은 역사적 흐름에 따라, 혹은 현실적 정치상황에 따라 주요한 측면으로 표출된다. 물질적 흐름이 강할 때는 ‘경제성장’으로 표현되는 반면에 정신적 흐름이 강할 때는 ‘민주화’로 표현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흐름이 전환된다는 것이고, 특정한 시점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김대호 소장이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좋은 예로 말하는 ‘빙산’이 있다. 이 ‘빙산’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 ‘빙산’의 속을 보지 못하는 무능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데,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 속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무능한데, 국민들의 요구가 모아진 ‘시대정신’은 바뀐다는 것이다. 2005년에서 2007년 사이에 일어난 ‘시대정신’의 대전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빙산이 특정한 시점에서 뒤집어진다는 가설이 성립해야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새롭게 물위로 올라온 빙산의 특정 부위가 절대적으로 부각될 때, 새로운 여론이 형성되는 것이다. 정확한 시대정신과 꼭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민심의 흐름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대선의 결과로 나타난다. 87년 직선제 개헌 후에 벌어진 대통령선거에서 항상 ‘시대정신’이란 것을 해석해 낼 수가 있었다. 국민 다수의 선택에서 나라의 지향을 보여주었다. 2007년의 대선의 결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나타난 진보개혁세력의 분화는 민주화 시대의 마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2005~6년을 거치면서 진보개혁세력은 극심한 분화의 현상을 거쳤다. 시대정신의 대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나타나게 된 결과다. 지금부터 2012년까지 대전환의 시대 후반기에 해당한다. 시대정신은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가치지향이다. 그래서 새로운 가치를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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