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지본주의는 16세기 유럽 경제를 휩쓴 '가격혁명'과 함께 서막을 열었다. 1545년부터 스페인이 중남미에서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들여왔고, 이것이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가면서 대부분 은화 아니면 금화였던 각국 화폐의 가치가 급락했다. 이로 인해 16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의 물가가 3~5배 이상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으나 물가 급등의 충격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인플레이션으로 무역 상인과 가내 수공업자들의 축적이 일어났고, 자본주의 발전의 밑바탕인 금융-산업자본이 탄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경영, 국제 무역의 확대로 전성기를 누린 글로벌 자본주의는 1873년 '장기 공황'의 시련을 맞는다. 미국과 영국의 '철도 버블'이 붕괴하고, 유럽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미국과 유럽 경제가 동시에 침체에 빠진 것이다. 정부의 대응은 실패했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은 것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 국가 간 무역이 크게 줄면서 경제는 더욱 악화되고 침체는 1896년까지 20여년 이상 계속됐다,
위기에 처한 글로벌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라는 대외 퍙창 전략을 통해 해답을 찾았다. 1900년대를 전후해 미국과 유럽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를 게방시키고. 식민지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경제는 다시 달아올랐고, 자유무역과 세계 경제에 대한 낙관이 만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평성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1929년 10월 19일 미국 주식시장의 대폭락과 함께 시작된 또 한번의 실패가 찾아왔다. 이른바 '대공황'이다. 빚으로 호황을 누리던 미국 경제의 버블 붕괴와 국제 무역의 감소가 원인이었다. 혼돈 속에서 결국 정부가 해결책을 찾아냈다. '경제는 배버려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자유주의 이념을 버리고 정부의 지출 확대와 독접자본 해체, 일부 산업의 국유화를 통해 경제의 조정자로 나서는 '수정자본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글로벌 지본주의는 또다시 살아남았다. 대공황 초기의 보호주의로 위축된 국제무역은 2차 대전을 맞아 미국과 유럽의 전쟁 물자 교역과 전시 자금 지원이 늘어나면서 회복됐고, 글로벌 경제는 과거의 전성기로 돌아갈 수 있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변용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1970년대의 석유 파동이 몰고 온 전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의 위기는 중동의 석유자본을 세계에 투자하는 금융 자유화와 시장 개방으로 이어진 신금융자본주의를 통해 극복됐다. 하지만 이로 인한 글로벌 불균형의 심화와 신금융자본주의의 폭주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역사는 위기가 계속되는 한 글로벌 자본주의의 진화도 계속될 것이라는 역설을 전하고 있다. 다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수반하느냐가 문제다. 이 과정에서 위기와 충격에 대응하는 정부정책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미셸 푸코는 "국가는 시장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틀이자 도구"라고 했고, 경제학자 찰스 킨들러거는 "정부는 모든 금융위기의 최종 해결자"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위협받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반복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다만 지금은 과거의 학습 경험을 갖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각 나라 정부가 글로벌 자본주의를 구해내기 위한 공조를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이러한 노력이 결국 성공을 거둔다면 글로벌 지본주의는 다시금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반대로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각 나라 정부가 이기주의적인 길을 걷게 된다면 글로벌 자본주의는 길고 긴 겨울잠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란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다 (0) | 2008.10.20 |
---|---|
이렇게 흘러가는지 (0) | 2008.10.19 |
그리운 부석사 (0) | 2008.10.17 |
미국발 금융자본주의 위기의 본질 (0) | 2008.10.16 |
<펌> 불편한 진실과 노무현 (0) | 2008.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