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
너는 주체적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는 질문을 내게 준 채식주의자를 향한 다른 시선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날, 불현듯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정말 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어했던 삶인가라는 질문에 닿을 때가 있다. 이 소설 역시 그런 관점에서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그저 삶을 타자의 의지에 따라 꾸역꾸역 견뎌온 사람에 대한 보고서다. 주관이 배제된 채, 타자에게 종속된 삶을 살아온 그러니까 자신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자기 학대를 통해 부조리한 세상을 부정하는 방식으로서 어떻게 채식과 자해와 거식을 통해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를 서로 다른 세 개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 '나무 불꽃 197쪽' -
이 문장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영혜의 언니 인혜가 산부인과에 치료를 받으러 가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깨닫는 상황을 3자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인혜의 삶뿐만 아니라 바로 영혜의 주관이 결핍된 삶이기도 하며,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행간이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라는 세개의 연작을 제대로 이해하는 문장이라고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