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서 새해를 맞다.
연말이 되면 새해 아침의 일출을 보리라 동해바다를 꿈꾸곤 했다. 오후 영주를 거쳐 봉화를 횡단하는 국도에 들어섰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미덕은 우리의 눈과 귀를 홀리게 하는 여느 계절로부터도 자유롭다는 것에 있었다. 겨울이란 보이는 것마다 모든 것이 최초, 시원의 세계가 아니던가? 텅 빈 들. 상록수를 제외한 모든 나무들은 그들의 모태인 대지에 잎과 열매를 돌려주고 온통 벌거숭이로 적막강산에 서서 오직 바람에 기대어 서걱거리며 시절의 망망함을 고독하게 견디고 있었다. 그러니 홀로 견디는 삶이 아니 섧을 수 있겠는가? 베일을 벗은 산에 무덤이 듬성듬성하다. 대부분의 무덤들은 볕이 넉넉한 곳에 누워있었다.
동해 울진의 겨울 밤바다는 차가운 공기의 질감만큼이나 사나웠다. 새해의 벽두, 전날의 늦은 잠자리에서 깨어 어둠이 물러나는 새벽을 추스려 일출을 맞으러 후포 월송정 해안으로 향했다. 바다 역시 잠들어 있었다. 잠든 밤바다에는 한낮의 빛이 완전히 밀려난 자리를 대신해서 어떤 소리들이 밀려온다. 거인의 심장 박동 소리처럼 때로는 일정한 속도로 혹은 일정한 간격으로 먼 바다로부터 뭍으로 달려오는 파도소리는 빛보다 더 깊고 더 넓은 세계로 나를 데려갔다. 새벽 바다는 밤의 바다로 물결치고 있었다. 새벽 바다에는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데 물결만이 잠들고 있지 못했다.
모든 일출은 장엄하다. 웅장하고 엄숙해서 사람의 말문을 막아 버린다. 빛과 어둠의 분명한 조화, 파도와 바람의 은근한 밀고 당김이 일정한 바다는 멀면서 가깝고 가까우면서 또 더 멀다. 동해의 일출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어찌하느냐고 묻고 있다. 이제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찬탄했던 동해의 벌건 불덩이가 올라온다. 해오름의 동해 바다는 늘 전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며 새해 아침을 열고 있었다. 새해, 나름 새롭고 경이로운 매 순간, 하루이기를 고대했지만 마르고 닳도록 관행적이었던 퇴행의 나를 떨쳐 동해 바다로 떠나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