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죽음에 대하여
체 게바라
2014. 3. 1. 23:28
2월의 토론 주제는 '죽음'이었다. 내 발표 차례가 되었다.
"여러분, 죽음의 반대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첫 말이 이런 질문으로 시작되자 다들 얼굴 표정이 헐! 또는 넹??으로 바뀌고 뜨악해지며 말문을 닫는다. 그들은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감히 질문의 소재도 되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는 투거나, 삶이나 살다라는 너무나 상투적인 답변을 하면 안될 것 같다는 진지함에 쓴 웃음들로 반응한다. 나는 죽음의 정의에 대해 평소 사유의 정지. 생명의 중단에 따른 사유의 중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죽음의 반대말은 궁극의 성찰, 사유일 것이고, 이에 의한 존재감의 시현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삶의 실체인 바, 그 반대 쪽을 죽음이라는 관념어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보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고 계시는지 알겠는데 1분만 더 생각해 주십시요. 그리고 차례로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하시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랑이 아닐까요? 변심한 사랑에 절망하여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보았거든요."
"꿈인 것 같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목숨에 다름 없으니까요."
"욕망, 욕구입니다. 욕망이나 욕구는 살아 숨쉬는 생명에게만 존재하지요."
"포기하고 체념하지 않기 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음의 인문학적 실체에 어느정도 접근했다는 점에 동의했다. 이것은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연유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이며, 역설적으로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또는 어떤 삶을 희망하고 실천할 것인가는 질문을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은 내가 기대했던 아주 좋은 징조였다. 나는 죽음 통해 오히려 펄펄 뛰는 생명력을 말하고 싶었고,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 분 일 초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회원들이 이야기한대로 사는 것이 답은 아닐까?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사는 것, 실현 가능한 꿈을 꾸고 실천하는 것, 이기적인 욕망이 아닌 좀더 이타적이고 공동체를 위한 욕망을 지피는 일, 포기나 체념하지 않고 치열하게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살아내는 것. 이외에는 대체로 죽음의 삶은 아닐까? 정치적으로 확장하여 마치 죽음의 반대말은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라고 답하는 회원이 있었다면 나는 100점을 주겠다. 반대로 삶의 반대말을 박근혜나 이명박. 새누리당 똘마니들처럼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면 당연히 110점을 줄 것이다.
"여러분, 죽음의 반대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첫 말이 이런 질문으로 시작되자 다들 얼굴 표정이 헐! 또는 넹??으로 바뀌고 뜨악해지며 말문을 닫는다. 그들은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감히 질문의 소재도 되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는 투거나, 삶이나 살다라는 너무나 상투적인 답변을 하면 안될 것 같다는 진지함에 쓴 웃음들로 반응한다. 나는 죽음의 정의에 대해 평소 사유의 정지. 생명의 중단에 따른 사유의 중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죽음의 반대말은 궁극의 성찰, 사유일 것이고, 이에 의한 존재감의 시현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삶의 실체인 바, 그 반대 쪽을 죽음이라는 관념어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보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고 계시는지 알겠는데 1분만 더 생각해 주십시요. 그리고 차례로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하시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랑이 아닐까요? 변심한 사랑에 절망하여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보았거든요."
"꿈인 것 같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목숨에 다름 없으니까요."
"욕망, 욕구입니다. 욕망이나 욕구는 살아 숨쉬는 생명에게만 존재하지요."
"포기하고 체념하지 않기 입니다."
"끝끝내 희망을 잃지 않는 자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음의 인문학적 실체에 어느정도 접근했다는 점에 동의했다. 이것은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연유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이며, 역설적으로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또는 어떤 삶을 희망하고 실천할 것인가는 질문을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은 내가 기대했던 아주 좋은 징조였다. 나는 죽음 통해 오히려 펄펄 뛰는 생명력을 말하고 싶었고,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 분 일 초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회원들이 이야기한대로 사는 것이 답은 아닐까?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사는 것, 실현 가능한 꿈을 꾸고 실천하는 것, 이기적인 욕망이 아닌 좀더 이타적이고 공동체를 위한 욕망을 지피는 일, 포기나 체념하지 않고 치열하게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살아내는 것. 이외에는 대체로 죽음의 삶은 아닐까? 정치적으로 확장하여 마치 죽음의 반대말은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라고 답하는 회원이 있었다면 나는 100점을 주겠다. 반대로 삶의 반대말을 박근혜나 이명박. 새누리당 똘마니들처럼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면 당연히 110점을 줄 것이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죽음이라는 강 건너편인 삶이라는 팔팔뛰는 생명의 약동, 생의 실현을 욕망한다는 것이다. 벗들이여. 그러니 이제 절기는 생의 약동이 눈앞에 활짝 열리는 봄이다. 벗들의 고양된 생명을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