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 시절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 다가오면 형들이 모두 대처로 나가 막내인 내가 아버님과 마주하는 우리집 아침 밥상에는 대부분 묵은 김치에 콩가루를 넣어 마치 손두부처럼 공가루들이 몽글몽글 뭉쳐있는 콩국이 따뜻한 김을 올리며 올라왔다. 이 국에 뜨거운 밥을 말고, 아버님을 따라 매운 고추장 한 숫갈을 풀어 놓고 먹다보면 어느새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몸도 후끈해져 학교가는 길이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을 끝으로 나마저도 대처로 나가게 되어 겨울의 콩국은 내겐 추억의 입맛으로 남아있다. 겨울이면 그 구수하고 매콤한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어머님의 손맛을 정확히 기억해내시던 큰누님 댁에 가끔 전화해서 얻어 먹곤 했었는데 큰누님도 지병이 있으셔서 이제 그마저도 수월치 않게 되었다.
이 맛을 재현해보려 마눌과 여러차례 실습을 해보았지만 역시 실패했고 이곳저곳의 비슷하다는 국을 먹어보았으나 영 아니올시오였다. 이런 경험을 지인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대부분 사람들이 모든 잊지못하는 맛은 추억과 연동된다는 것, 최고의 맛 역시 주로 어린 시절에 먹었던 추억의 음식에 연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어느 사람에게 잊지 못하는 맛이란 과거에 그 음식과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기억을 동반한다는 것이고, 그 음식과 함께 지금은 같이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추억의 그리움이라는 총화라는 것이다. 기실, 거의 오십여년 전의 그 맛을 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맛에 대한 그이움 뿐만이 아니라 잊지못할 순간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고 추억인 것이리라. 게다가 함께했던 아버님도 어머님도 이제는 곁에 계시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갈수록 과거의 추억과 기억에 촛점이 맞추어진 나의 입맛을, 그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다고 고집피우는 나의 욕망을 탓하는 마눌님의 지청구에 맞서 여전히 어머님의 손맛에 발목 잡혀있는 나를, 원망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그 맛의 재현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놓아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다. 당신이 잊지 못하는 최고의 맛은 무엇인가? 그 최고의 맛에는 어떤 그리움과 추억이 쌓여있는가? 그 이야기를 이 겨울이 다가기 전에 내게 나즈막히 들려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