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소크라테스여, 당신이 틀렸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
체 게바라
2013. 9. 15. 12:52
소크라테스여, 당신이 틀렸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나는 안티고네의 이 말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싸워야 함을 알고있다. 싸워서 지켜내지 않으면 사랑은 더 이상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그녀가 오이디푸스의 막내 딸로 태어나면서 자신이 지닌 운명으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여야 하며, 절대적 권력 앞에서의 한 개인의 무력함, 피할 수 없는 운명 등, 부조리한 인간의 조건으로 그 누구보다도 짧은 삶에 직면하였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티고네의 용기는 인간 한계의 자각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는 자는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현실에 투항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관객들은 안티고네의 죽음을 보며 신들 앞에 미천한 존재인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취는 신념과 용기, 그리고 저항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국가질서를 존중하지 않는 자를 매장하면 안 된다는 크레온이 정한 실정법에 대항하여 자신의 친육인 오빠의 주검을 장례치르는 안티고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치 투쟁에서 관객들은 안티고네의 손을 들어준다. 그리하여 안티는 보편적 이성을 지키는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국가보안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법이 어떤 식으로도 보편화될 수 없고 이성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법률이라는 것에 있다. 설령 겉보기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법이 제정되었다 해도 우리의 이성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소위 행동의 결과를 처벌하는 실정법과는 달리 우리의 생각과 말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법의 보편주의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때 악법에 대한 저항과 불복종은 이성을 구하고, 우리가 이성을 존중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요, 방법이 아닌가? 이 경우 법을 어기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성적인 행동이 아닐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성과 보편성을 추구하는 고귀한 행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법에 대한 불복종이 이성적 행동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법 자체가 보편성, 즉 이성에 위반될 때 뿐이다. 이러한 악법을 따르는 것은 오히려 이성과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악법에 대한 불복종이 정상적인 법체계의 복원을 상정한다는 측면에서 또는 정상적인 법체계 복원을 적극적으로 준비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함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교조주의에 갇힌 북한을 제외하고 인간의 생각과 말을 처벌하는 나라가 대명천지에 존재하는가? 북한에 대항하여 우리도 상응하는 법을 상치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얼마나 찌질한가! 우리의 이성이 이 정도 수준이었는가? 우리나라와 사회는 후져도 너무 후지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나는 안티고네의 이 말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싸워야 함을 알고있다. 싸워서 지켜내지 않으면 사랑은 더 이상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그녀가 오이디푸스의 막내 딸로 태어나면서 자신이 지닌 운명으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여야 하며, 절대적 권력 앞에서의 한 개인의 무력함, 피할 수 없는 운명 등, 부조리한 인간의 조건으로 그 누구보다도 짧은 삶에 직면하였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티고네의 용기는 인간 한계의 자각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는 자는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현실에 투항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관객들은 안티고네의 죽음을 보며 신들 앞에 미천한 존재인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취는 신념과 용기, 그리고 저항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국가질서를 존중하지 않는 자를 매장하면 안 된다는 크레온이 정한 실정법에 대항하여 자신의 친육인 오빠의 주검을 장례치르는 안티고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치 투쟁에서 관객들은 안티고네의 손을 들어준다. 그리하여 안티는 보편적 이성을 지키는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국가보안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법이 어떤 식으로도 보편화될 수 없고 이성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법률이라는 것에 있다. 설령 겉보기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법이 제정되었다 해도 우리의 이성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소위 행동의 결과를 처벌하는 실정법과는 달리 우리의 생각과 말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법의 보편주의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때 악법에 대한 저항과 불복종은 이성을 구하고, 우리가 이성을 존중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요, 방법이 아닌가? 이 경우 법을 어기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성적인 행동이 아닐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성과 보편성을 추구하는 고귀한 행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법에 대한 불복종이 이성적 행동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법 자체가 보편성, 즉 이성에 위반될 때 뿐이다. 이러한 악법을 따르는 것은 오히려 이성과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악법에 대한 불복종이 정상적인 법체계의 복원을 상정한다는 측면에서 또는 정상적인 법체계 복원을 적극적으로 준비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함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교조주의에 갇힌 북한을 제외하고 인간의 생각과 말을 처벌하는 나라가 대명천지에 존재하는가? 북한에 대항하여 우리도 상응하는 법을 상치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얼마나 찌질한가! 우리의 이성이 이 정도 수준이었는가? 우리나라와 사회는 후져도 너무 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