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작(化作), 불협화를 이기는 일체의 세계
바람의 질감을 깊이 있게 느껴본 적이 있느냐고 누가 물었다.
햇빛 화사한 바람부는 날, 야외로 드라이브를 나가 차창을 모두 열고 손을 밖으로 내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달아나는 바람을 질감으로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는 나에게 장면을 바꾸어 바람부는 석양이 지는 날,
호숫가로 나가 눈을 감고 두 손을 벌려 바람의 실체를 온몸으로 느껴보라고 권했다.
아니면 바람부는 날, 꽤 높은 산 정상에 올라 역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려 바람의 질감을
오래도록 온몸으로 즐겨보라고 권했다.
바람은 모든 것을 악기로 바꾸어놓는다.
나뭇가지가 노래를 하고,
계곡물이 화음을 넣고,
나뭇잎이 박수를 친다.
비는 풍경을 깨운다.
비가 내리는 순간,
모든 것이 살아난다.
색깔과 냄새가 서로 당신의 관심과 주위를 끌기 위해 다투고
들리는 소리는 오직 하늘이 땅을 두드리는 소리 뿐.
이 모든 것들이 가슴을 열고 주의깊게 오랫동안 집중해야만 겨우 닿을 수 있는 것들이다.
자연은 바쁘고 가벼운 사람에게는 좀체 그의 실체를 보여주는 않는다.
행복은 자연의 실체에 가깝게 접근하고, 결국 그들과 내면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에 범접하기 위해서는 자연이 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화작(化作)이라고 한다.
자아가 우주와 일치될 때에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세상이리라.
인간적으로 화작에 이른 사람.
노무현.
그는 피할 수 없이 정치적 논쟁과 시시비비의 대상으로 꽤 오랜 시간 한국 정치의 중심에서 회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