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우리들 기억속의 고향은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가고 있을까요?
형님, 우리들 기억속의 고향은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가고 있을까요?
형님,
봄이 전하는 형체는 아주 소심하게 시작해서 어느 날 예기치 않게 다가오기 일쑤여서 제게 있어 봄이란 마치 작별의 인사도 없이 헤어져 이젠 얼굴마저 아련한 기억속의 첫사랑과 그 맥을 같이합니다. 아침과 한낮, 저녁의 냄새까지 조금씩 바뀌고 하루가 다르게 볕마저 명암과 밀도를 달리하는데 조심스럽지만 빛들이 성기는 저녁의 퇴근 무렵, 노을은 서쪽으로 달려가 쇠잔해진 몸을 허덕이며 넘어가고 그들의 잔영만이 퇴락 장승의 꼴로 길게 드러눕고 있습니다. 석양만 보면 그저 가슴 설레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엔 아쉬울 것도 없이 온전히 보낸 오늘을 노을에 나를 투영시키던 우리 젊은 날의 노역의 하루, 온통 땀 흘린 자만이 느낄 수 있던 고단하지만 보람에 젖던 바로 그런 시절 말입니다. 이제 세월이 지나 머리에 서리 내리는 시절을 만나자 겨우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수치와 자존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며 한 몸으로 뒤엉킨 것이 삶인 것임을 깨달을 때까지 예전엔 장엄하기만한 이 일몰이 전하는 가슴 벅차던 이미지를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그저 먹먹하고 무참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형님,
봄은 순식간입니다. 봄의 생명체들의 자지러지는 개화와 산화, 그리고 그들의 물오르는 절정과 욕망과 그리움들이 봄의 공간을 하루가 다르게 가득 채워가는 이 넘치는 호사를 감당하기에 나는 관능을 열어 몸을 떨었기에 봄꽃들이 흐드러지면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많았습니다. 봄의 꽃들이 억척스럽게 외로이 우뚝 세우는 자기 존재의 완성과 그 완성의 절정에서 거의 동시에 일거에 소멸해버리는 저들의 치열한 생명의 역사는 저처럼 범박한 세속의 이해로는 만날 수 없는, 이생에서 허락된 짧은 시간일지언정 치열하게 살아야만 자기 생에 온전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진리에 저는 그들의 완성과 소멸에 대해 그저 가슴만 다칠 뿐이었습니다.
벚꽃들의 산화는 생명은 언젠간 소멸한다는 것, 언젠가 소멸할 바에는 내가 옳다고,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위해 소멸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작정한 사람의 필사적 의지의 선택같은 비장함을 남깁니다. 봄의 꽃들이 전하는 이런 의미심장한 의미처럼 철마다 봄은 제게 고향에 대한 향수병을 남겼습니다. 그리하여 나이 들어 돌아앉은 지금 지난 세월동안 우리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 의미나 가치를 살펴볼 여유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고향과 내처 지나쳤던 고향 풍경들과 고향 사람들에 대해 추억합니다. 되돌아보면 고향을 떠났던 것은 저희들이었을 뿐, 고향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그 자리에서 언제까지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세상의 더러움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노골적으로 지분거리는 것에 대해 속수무책인 채 그저 아름다움이 누추해지는 것을 아쉬워했으며, 아쉬움이란 가슴에 담는 것일 뿐, 말해질 수 있는 것을 넘어서 농삼아 지껄대었으므로 대처 내 속내 또한 거칠고 가난하기가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형님,
봄에는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새로운 이름표를 답니다. 저희에게 오는 봄들은 새로울까요? 우리들이 맞이하던 기억 속 고향의 봄들이 과연 새로웠던 적이 있던가요? 형님, 기억속의 아름다웠던 고향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가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