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길을 잃다

체 게바라 2012. 12. 24. 23:47

 

 

 

 

내키지 않았지만 아내의 성화에 집을 나서자 찬 바람에 온몸이 진저리친다. 산은 고요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좀더 따뜻한 곳으로 숨어들게 하는 강추위에 겨울 아침의 안개마저 물러가지 못하고 숲속을 서성이고 있었다. 찬바람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오그라드는 내 몰꼴은 그저 비굴하기가 그지없고 전쟁에 패해 오라에 끌려가는 포로 신세에 다름아니어서 앞장서는 아내를 향해 천천히 가자며 그저 볼멘 소리를 질러대기 바빴다. 이럴지니 가끔 나는  세상사는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싫어하는 일의 이분법으로 이루어졌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 오리무중인 까닭이다. 산중에 내린 안개는 해가 들 때까지 저절로 없어지지 않아서 햇볕이 들지 어떨지 모르지만 아마도 신은 인간들에게 따뜻함을 깨닫게 하려고 이렇게 매서운 겨울을 만들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장갑을 꼈지만 손도 눈길을 밟는 발가락 또한 저리게 시려온다. 추위는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며 재잘거리는 소리를 쫓아 냈듯이 숲속에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인기척을 사라지게 했다. 오직 고요와 정적만이 추위와 어깨동무하고 숲을 어슬렁 거릴 뿐이다.

 

 

 

 

 

오직 독야청정한 소나무 가지만이 유별나다. 내겐 저렇게 저홀로 푸른 소나무는 이 계절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홀로 청정하여 뚜렷하다는 것, 그것은 그리 빛나 보이지도, 추상같은 찬 겨울에 홀로 맞서고 있다는 기상이나, 솔잎마저 서슬 퍼렇게 살아있어 당연히 받아야 할 찬사마저도 풀이 죽어 보였다. 그러니 대처 겨울은 내게 쓸쓸해야 옳았다. 그러니 대처 겨울은 내게 외로워야 옳았다. 쓸쓸하고 외로워야 위로해줄 마음이 열리고, 따뜻하게 안아줄 가슴이 동하는 법이다.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더 오르기를 포기하고 시작의 중반에서 생각만 맴돌다 결국  산의 입구에서 사람의 동네로 발길을 돌린다. 할 수 없는 이유를 대자면 천가지도 넘겠지만 오늘은 추위와 쓸쓸함에 진저리치게 질린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