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바로 너와 나 우리들이고, 메시아는 이미 우리 안에 와 있지 않은가? 시대의 절박한 질문에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고든은 베트맨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고든은 물었다.
" 난 한 번도 당신이 누구인지 신경쓰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한 영웅이 누구인지 알아야 되지 않겠소? "
" 영웅은 누구나 될 수 있소"
베트맨은 대답했다.
" 어린 소년의 어깨에 코트를 둘러준 뒤 세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주며 안심시키는 사람도 말이요."
a Hero can be anyone - 영화 , 베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 중에서-
메시아니즘(Messianism)의 본질은 기다림이다. 사람들은 메시아가 나타나 악에 물든 세상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천국을 건설하리라는 약속이 실현되기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지복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현세의 고난을 인내한다. 기다리는 자는 지금 여기의 악과 고통을 말끔하게 씻어 줄 메시아가 도래하기 전에 기다림의 무한 속에서 무엇보다도 자기를 고갈에 빠뜨린다.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 자기를 분리하고 자기를 배제한다. 마침내 기다림은 그것의 주체와 그 주체가 욕망했던 기다림의 대상을 무화(無化)시키고 그 텅빈 자리는 기다림 속에서, 기다린다는 것이 기다림의 불가능일 수밖에 없는 시간의 부재가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저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처럼 기다림의 구원이라는 기다림에 좌초해 있을 수 만은 없는 것이다.
분명하지만 안철수 현상은 개인 안철수를 메시아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안철수 현상이 이 땅에 저 위대한 80년대의 민주화 여정에서 획득한 87체제의 이념과 가치체계가 시대적 한계에 봉착했으며 극복되어야 할 질서임에도 불구하고 현상유지되거나 오히려 이전 시대로 역주행하여 구질서 체제화 하는 것에 따른 극도의 정치혐오라는 피로감에서 발화되었던 연유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안철수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할 도구를 찾아낸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 시골길 위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두 늙은 방랑자처럼 우리는 이 불모의 세상에서 어떤 메시아를 기다려야 하는가?
메시아는 안철수가 아니라 바로 국민 대중 한 사람 한 사람들이다. 시대를 수용하는 새로운 정체 체계를 세우는 일. 영웅은 바로 너와 나 우리들이고, 메시아는 이미 우리 안에 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시대정신은 우리들 각각의 영웅들에게 무엇을 실천해야 하느냐고 절박한 심정으로 묻고 있다. 이제 시대의 질문에 우리가 답변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