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모든 속물, 상투성에 대한 불가역성에 신음처럼 니힐리아를 되뇌이며

체 게바라 2012. 11. 21. 22:27

 

 

로캉탱은 항구 도시에서 한 귀족의 전기를 쓰는 일에 몰두한다. 그의 일상이란 단조롭기 짝이 없다. 일기 쓰기, 사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과 관계 맺기, 카페, 도서관, 박물관 따위에서 어슬렁대기가 그의 일상의 전부다. 그의 구토는 이 세계에 가득차 있는  속물들의 진부함에 대한 거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속물들의 진부함에서 견디는 데서 생겨난 피로의 징후다. 마침내 로캉탱은 그 속물들의 세계와 결별한다. '나는 돌아다봤다. 작은 그림의 성당 속의 한없이 고운 백합이여, 안녕, 우리들의 자존심이여, 우리의 존재 이유여, 안녕, 더러운 새끼들이여 안녕.

 

김무성이라는 者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부정해 그걸 감추기 위해 자살하지 않았나"라는 발언 속에 내재된 대저 비길 데 없는 저속한 이념의 누추함에, 수단과 방법이 목적하는 지리멸렬의 진부함이, 그의 신주단지인 박근혜양이나 새누리 집단의 집단적 질서에 포획되고 응축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어정쩡함이, 온종일 혹은 어제 오늘과 내일을 쉬지 않고  징징거려도 목조차 쉬지 않는, 그러나 그의 발언이 목표하는 과녁과는 관계없이 대의는 커녕 소의조차 살려내지도 못하고 분리 수거되는 오물로, 결국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  속물적 권태로움이 그것은 차라리 그들 수구집단 존재 고갈의 자기증명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다. 지쳐. 우리의 물적 욕망에 기생하는 끊어 낼 수 없는 그들의 잡초처럼 끈질긴 생존기계의 토대에 대하여. 그러할지니 내가 많이 비겁했다.          

 

이념의 목적론은 불가역성의 우리 의식을 단정하여 손쉽게 도식으로 재단하고, 회의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신념 체계는 반드시 당파성으로 분출된다. 그것이 무엇인든 진부하고 상투적이며, 저급한 속물의 내적 질서에 충실할 뿐이다. 따라서 김무성이든 새누리당이건 박근혜양이건 그들의 비루한 신념보다는 차라리 똥과 오줌에, 그들이 자학적, 자폐적 이념보다는 아기의 옹알이에 더 이끌린다. 오늘도 나는 사르트르의 구토의 한 구절을 읽으며 씨바! 식은 방귀나 뀌고 있자고 결심한다. '나는 돌아다봤다. 작은 그림의 성당 속의 한없이 고운 백합이여, 안녕, 우리들의 자존심이여, 우리의 존재 이유여, 안녕, 더러운 새끼들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