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20대, 저 질풍노도의 청춘을 침몰시키는 괴물. 좌절과 불안, 그리고 공포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체 게바라 2012. 8. 18. 20:41

 

 

20대, 저 질풍노도의 청춘을 침몰시키는 괴물. 좌절과 불안, 그리고 공포

 

방학이라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막내가 2명의 친구를 데리고 귀향했다. 심리학과 동창인 막내와 친구, 미디어학부에 재학 중이라는 친구와 저녁을 먹고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로 데려가 담소를 나누었다. 자신들의 학교 선배인 대통령 힐난으로 시작된 대화는 어느덧 7학기를 맞게 된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의 장으로 변했고, 자신들을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 절망에 좌초된 세대라는 자조어린 푸념을 들으며 소위 인문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는 내가 녀석들에게 위로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에 이르자 나는 부쩍 조바심이 났다.

 

그랬다. 저 치기어린 20대에 인생과 사랑과 미래에 대하여 심각하지 않는 청춘이 어디 있을까? 동시에 이 시기는 진정성의 결기로 꽁꽁 뭉쳐 내일 죽어도 좋을 만큼 아이의 전 생애가 녹아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란 무한히 반복하고, 그저 삶이란 루틴 리플레이, 일상성의 되풀이가 연속되는 상투성의 상궤를 이탈 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는 아니겠는가? 그러나 내 청춘을 돌아보면 삶과 사랑이 사소한 에피소드의 집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발견은 30대 후반이나 40대가 되어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 동어반복의 고뇌를 말로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내 처지도 심히 딱해졌다.

 

내 결론은 이랬다. “철학이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행동과 실천이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고, 불변의 보편성도 죽었다. 내일의 너희들은 결국 어제와 오늘의 지적 탐구와 실천의 결이 뭉쳐 구현되는 실존일 것이다. 주자가 설파한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으로 질풍노도의 기세를 꺾이지 말고 맹렬하고 치열할 것. 본질과 궁극에 닿기 위해 마치 당장 죽을 만큼 혼과 힘을 쏟을 것. 좌절과 불안, 공포는 그저 지나가는 개나 소에게 던질 것.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말문이 막혔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이들도 35년 전, 나와 똑 같았던 생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동질감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헤쳐 나왔을까?

 

선배, 제가 이 존만한 청춘들에게 제대로 조언하기는 한 겁니까? 지금 제겐 그저 고만고만한 꼰대들의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책이 남았고 이 화두는 꽤 오래 갈 것 같다는 예감이 마음을 짓누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