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여행생활자 - 어느 고향 없는 자의 오지 부랑기

체 게바라 2012. 6. 30. 21:41

여행이 나를 굴리고 다녀서, 나는 여행생활자가 되었다.

일상을 여핼으로 늙어버린 사람은 다만 홀로 함구하고 바람 속을 걷다가 사라지거나 하겠지만, 그리고 가끔은 그 소외 몇 구절이 함부로 자유의 이름으로 팔려나가기도 하겠지만, 여행생활자란 말은 내 입 밖으로 뱉어진 그 자리에서 시작해 이미 나를 넘어서서 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돌멩이처럼 그 걸 그 길위에서 부림을 당하였다.

 

문득 떠나와 1년 반이 지났다.

길 위에서 수많은 곳을 들락거릴 때마다, 내가 알거나 혹은 모르는 것들이 하나같이 그 어떤 장소가 되어 내 앞에 펼쳐졌다. 과거도, 그리고 상처의 기억도 장소이며, 계절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내 기억 속을 헤맨 듯하나 여행이 끝날 즈음 헤서는 떠나온 이유도 아득한 채로 다만 눈앞의 풍광 속을 타박타박 걷고 잇었다. 그 사이 열병에 걸려 몇 번 쓰러지고, 깨어날 때마다 나는 몇 개의 말들을 마음에 새기었다.

 

여행은 끝났다. 

구태여 돌아보지 않는다면 길 위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나는 이제 잊었다. 하지만 당신을 보고 나를 보고 하물며 흩날리는 벚꽃 한 점을 봐도, 그날의 뉘앙스들이 면면하다. 이것은 마치 겹쳐진 두 개의 장소를 사는 듯해서, 아주 자주 눈앞에 있는 것이 아득하고 아득한 것이 눈앞에 있다. 여행과 생활은 어쩌면 서로가 사로에 대한 몽중몽과 같아, 그것이 꿈일지라도 어느 하나 생시 같지 않은 것이 없다. 꿈속에서 또 다시 꿈을 꾸는 꿈은 하마 생시 아니던가. 하지만 그 속에는 이미 꿈도 생시도 아닌 세상 끝의 감각이 있다.

 

아직 길 위에 있는 사람아, 너무 외롭거나 아프지 마라. 세상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이 있고, 못 만날 사람이 잇지만, 세상 끝에 걸쳐 눈이 눈물처럼 빛나는 그대의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사라지지 말고 이 말을 가슴에 새겨다오. 오래오래 당신은 여행생활자다.

 

유성용. 시인이자 자칭 여행생활자. 1971년 전주에서 태어 났으나 고향이 없고, 배를 타거나, 북한산과 지리산 자락 등에서 살았다. 대학 졸업 후 꽃게잡이 배를 탔고, 고등학교 국어 교사 생활을 3년 했다. 4년간 지리산 화개와 악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맹물 같은 수제 덖음 녹차를 만들었다. 1년 6개월 동안 파키스탄, 티벳, 인도, 네팔, 스리랑카 지역을 타박타박 여행했다. 백수의 몸으로 방대한 공해 속을 걷거나 높고 맑은 지구의 변두리를 헤매인다. 기울어져 가는 헌 집을 고치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고, 가끔씩 다방에 들러 맹물커피를 마시고 예쁜 레지에게 정답게 팁을 준다. "머리 예쁘게 하고 와라!" 인생은 슬프고 세상의 모든 것은 더함 없이 체험만 같다. 그의 글은 그가 여행 중에 찍는 사진과 같이 정직하다. 그의 렌즈에 잡힌 풍광은 어떤 사진적 기술이나 가공 없이 그 때의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듯, 그의 글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직업적 글쟁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적어도 그가 마주했던 마을과 풍광에 대해 그의 눈과 마음으로 들어온 것에 대해 그가 아무런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는 선입견을 신뢰해도 좋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는 거친 오지를 여행하는 일은 마치 험지를 탐험하는 탐험가의 태도라고 불러도 손색없다. 그는 웬만하면 가급적 자신의 몸을 여행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러기에 그의 여행기는 차라리 기행기(奇行記)라 할 것이다. 해서 그의 글은 거칠다. 그러나 모든 1차원적 요소들이 그렇듯 가장 자연적이기에 따뜻하다. 더불어 인간적이다. 해서 깊은 페이소스가 배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