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에게 기억이 사라진다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만일, 당신에게 기억이 사라진다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오래전에 넘어져 나무 가지에 오른쪽 눈의 수정체를 깊이 찔린 적이 있었다. 염증이 가라앉지 않자 의사는 항생제 단위를 높여 치료하다 안 되면 염증 부위를 제거하는 재수술을 하고, 최악으로는 실명을 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보통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의사의 실명이라는 말에 며칠을 고민하며 상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 팔을 잃어도 자신을 ‘나’라고 인식한다. 두 다리를 잃어 아예 스스로 걷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을 ‘나’라고 생각한다. 뇌와 관련된 책을 읽다가 드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질문한다.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려도 과연 ‘나’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결국 자신의 팔과 다리가 내 팔과 다리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팔과 다리를 내 팔과 다리라고 기억하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이 질문에 기꺼이 동의한다.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그 추억어린 기억 속에 남겨진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대는 아는가? 행복한 순간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사람이 행복한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천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의 한 문장이 생각난다. 인간은 기억이라는 연료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만약 그 연료가 없다면 그래서 우리 안에 기억의 서랍장 같은 것이 없다면 아마도 아득한 옛날에 뚝 하고 두 동강이 나 버리거나 어딘가 낯선 곳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길바닥에 쓰러져 개죽음을 면치 못했을 존재라고..
기억된 얼굴들, 기억된 시간들, 기억된 지식과 사유 체계들, 기억된 사물들과 감정들이 모여서 ‘나’라는 존재를 만든다면 어쩌면 사람이 사랑을 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기억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모든 기억들이 모여서 내 정체성을 이룬다는 생각에 닿자, 내가 하루에 직접 대면하는 사람이든 넷상에서의 만남이든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언어를 진정으로 대하여야 하겠다는 각성이 드는 것이다. 결국 내 정체성은 내가 만나는 사람, 그들과 소통하는 지식과 대화를 기초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상대방의 정체성을 내가 만들어간다는 바로 '나'라는 존재성의 중요함을 깨닫는 토요일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