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 창조적 파괴인 '혁신'을 도입한 경제학자 슘페터
혁신은 전 세계 기업에서 추구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대상으로의 변화이자 창조를 뜻하는 혁신은 시장의 역동성을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중시되고 있다. 경제학에서 처음으로 혁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슘페터였다. 슘페터는 폭넓은 이론적 관심과 통찰력으로 시대를 앞서갔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자본주의를 자본주의가 되게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자본주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슘페터는 이런 질문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경제는 주기를 갖고 성장과 쇠퇴를 반복한다. 일종의 순환이다. 넓은 역사적 안목을 갖고 봤을 때 경제는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는 정태적 순환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이다. 슘페터가 관심을 갖고 있던 '성장이론'과 '순환이론'은 당시 정통파 경제학자들의 이론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의 이론들은 그의 사후 반세기 이상 지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재평가되고 있다. 슘페터 자신이 그 무엇보다 혁신이었다.
1942년 자본주의 장래에 관한 슘페터의 가장 선동적인 저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마르크스 학설'은 마르크스 이론을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자본주의의 붕괴 과정을 서술한다. 그리고 3부 '사회주의는 작동할 수 있는가'에서 자본주의가 붕괴한 후 나타날 사회주의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성숙상태의 사회화와 미성숙 상태에서의 사회화를 언급하고 있다. 슘페터는 이 혁신적인 저서를 통해 어떻게 자본주의가 활성화되는지를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자본가 정신에서 비롯된 혁신이 자본주의를 살려내고 그들이 어떻게 무용화되는지 그 과정을 그려내는 것이다. 슘페터의 경제성장 이론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업가가 주도하는 기술혁신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 기업가의 의지에 의한 기술발전은 자본 축적에 힘을 부여하고, 또한 경제의 성장 과정에 침체와 고양의 경기 순환을 불러들인다. 이런 슘페터의 체계에서 노동은 수동적인 요소이며, 자본은 기업가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생산 재료를 구입하여 새로운 생산 양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슘페터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동력이자 변화의 주체로 꼽았다. 슘페터에 따르면 혁신은 크게 5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1단계는 신제품의 발명 또는 개발이고, 2단계는 신생산법의 도입이나 신기술의 개발이며, 3단계는 신시장의 개척이고, 4단계는 신원료나 부품의 새로운 공급이며, 5단계는 신산업에서 새로운 조직의 형성이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 과정이다. 창조적 파괴란 더 큰 가치를 위해 낡고 오래된 것을 버리고 경쟁력 있는 새것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은 생산성을 향상시켜서 생산비를 낮추고 새로운 수요를 창조한다. 기업의 판매수입은 올라간다. 이에 따라 기업가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추구한 기업가는 역시 이윤을 얻는다. 그리고 이런 이윤은 기업가의 모험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슘페터는 기업가를 혁신을 추진하는 개인이라고 명명한다. 기업가의 기능은 혁신 수행을 통해 생산 방식을 진일보시키는 데 있다. 슘페터에게 자본주의란 자본가들이 열정적인 기사와 같이 행동해야만 발전의 계기가 유지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추진력은 용감한 사람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전 재산을 걸 수 있는 사람들, 창의와 시험과 확장을 감행하는 기업가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기업가 정신이다.
혁신과 기업가 정신은 자본주의를 꽃피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밝은 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장래를 최종적으로 평가하면서 '자본주의는 잔존할 것인가? 아니,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일까? 로맨틱한 경제학자 슘페터의 눈에 자본주의는 애초의 매력과 흥분에 휩싸인 마상 창술 시합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이 마상 창술 시합은 긴장과 열광의 분위기를 잃고 무미건조하고 실제적인 하나의 사업이 되어 갔다. 자본주의의 눈부신 발전은 드디어 경제 진보 자체까지도 자동 기계화하여 발전의 추진력인 기업가의 역할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 독점기업에서 경제의 혁신이란 과거와 같이 어떤 기업가의 개인적 자질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계화된 일상 업무로서 전문가의 손에 의해 사무실 책상 위에서 행해진다. 자본가 정신도 기계화되어 혁신이 더 이상 혁신이 될 수 없는 단계, 자본주의가 더 이상 도약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결국 슘페터는 기업 자체가 자본주의적 기질을 잃고 자본주의 체제를 사수하려는 정열이 사라지며 정신도 물질도 사회주의에 호의적으로 바뀌어 가면 지지자를 잃게 된 자본주의는 드디어 다른 체제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자본주의의 여생에 관한 슘페터의 예측이 정확하다면 그 진단의 정확성에 대한 평가는 우리 자손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정확성이 어떻든 간에 슘페터의 생각은 우리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자기가 주문으로 불러낸 저승사자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술사와도 같다'고 했다. 자본가가 발전시킨 엄청난 생산력은 파괴적인 공황을 방생시키며 자본주의의 파멸을 재촉한다. 마르크스와 슘페터가 이야기한 자본주의 붕괴 과정은 다르지만 이후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결론은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다.
슘페터는 비민주적인 사회를 고발한다. 그는 사회주의자들이 자기가 사상이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사례를 인용한다. 그는 사회주의를 자본주의가 미숙한 상태에서 등장한 소련형과 성숙한 자본주의하에서 등장한 사회주의로 나누고 영국식의 개량주의적 사회주의를 높이 평가한다. 슘페터는 민주주의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 방식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가 어느 사회에서나 반드시 최상의 정치 방식인 것은 아니다. 그는 민주주의적 방식이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민주주의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무시한 채 민주주의 그 자체를 최상의 가치로 이상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는 민주주의 없이도 존재할 수 있고, 또 양자기 결합되어 존재할 수도 있다고 결론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