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펌>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마지막 비서관 최경환·김경수

체 게바라 2011. 8. 18. 11:58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두 사람이 만났다. 2년 전 두 전직 대통령이 눈 감을 때 곁을 지키며 누구보다 굵은 눈물을 흘린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52)과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44)이다. 김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앞두고 지난 16일 저녁 서울 동교동 김대중평화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대통령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인연과 그 빈 공간의 의미를 풀어냈다. 자유롭게 흐른 대화에는 내내 동병상련의 시선이 교차했고, 비화를 떠올릴 때면 '팩트'를 맞춰보며 긴장감이 일었다.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왼쪽)과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이 16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평화센터에서 두 전 대통령을 회고하는 대화를 나누다 웃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최경환 "DJ, 마지막에 잠깐 회복돼 호흡기 떼자 일성이 '단결하라'였다"

▲ 김경수 "노, 퇴임 후 봉하 주민과 막걸리 마시다 직접 폭탄주 만들기도"

최경환 공보실장(이하 최경환) = 김 국장은 청와대에 언제 들어갔나.

김경수 사무국장(이하 김경수) = 노 전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 인수위에 있다가 바로 청와대로 들어갔다.

최경환 = 난 1999년 말에 청와대 공보실에 공보비서관으로 들어갔다. 김 전 대통령의 퇴임 후 동교동에 따라가서 돕다가 2004년 지금 자리에 공식 발령장을 받을 때는 하필 노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었다. 내가 받은 발령장에는 노 대통령 이름이 아니라,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자로 돼 있다.

- 퇴임 후 두 대통령은 어떻게 지냈나.

최경환 = 김 전 대통령은 민족 문제에 제일 관심이 많았다. 현안도 계속 벌어졌고,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동을 집중했다. 해외에도 많이 가고, 강연도 하고….

김경수 = 노 전 대통령은 '아 좋다'하고 고향으로 갔다. 그의 관심은 두 가지였다. 농촌마을인 봉하를 아름답게 가꿔서 '모델'로 만들고, 이를 전국에 확산시키려고 했다. 또 '진보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인터넷 토론 사이트('민주주의 2.0')도 만들고, 강연도 하고 연구도 하고 그렇게 일상을 보냈다.

- 두 전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는 어떤가.

김경수 = 노 전 대통령은 소탈하다. 고교 친구들이나 마을 친구들과 격의 없이 지냈다. 봉하마을에 내려가서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과 소주를 마시고 막걸리를 각각 마셨는데,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밋밋하게 마시느냐"면서 섞어서 폭탄주로 만들었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과 술을 마실 때 "안말아(섞어)"라고 먼저 묻곤 했다.

최경환 = 대통령이 되는 분들의 특징이 사람과 인연을 맺으면 오래가는 것 같다. 나야 불과 10년이지만, 권노갑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50년,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30년, 운전기사도 30년 넘었다.

김경수 = 같이 일을 하게 되면 계속 일하고 싶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 같다. 1988년부터 노 전 대통령 운전기사 했던 분이 지금도 봉하에 있다.

최경환 = 김 전 대통령은 강단과 집념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눈물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어떤 분이 그를 가리켜 '휴머니스트의 감성과 정치인의 용기를 동시에 갖춘 독특한 성품을 가진 분'이라고 했다.

김경수 = 김 전 대통령이 1987년 가택연금 해제 후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서 펑펑 울던 사진이 기억난다.

최경환 = 1973년 납치당했다가 돌아와 기자회견 때 그랬고, 노 전 대통령 영결식 때도 통곡을 했다. 눈물이 많아서 박지원 비서실장이나 보좌진이 "자꾸 울면 건강이 안좋은 걸로 오해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서운했던지 김 전 대통령이 다음날 '내 마음이 그래요. 어떻게 해요. TV를 봐도 어려운 사람이 나오면 감정이 그래요(슬퍼요)'라고 말했다.

두 전 대통령을 옆에서 보좌한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말투가 닮는다. 최 실장이 "내 마음이 그래요"할 때는 김 전 대통령이랑 어투가 똑같다. 김 국장도 사투리 섞어 노 전 대통령 말을 전할 때 흡사했다.

- 두 전 대통령이 얽힌 일화가 많을텐데.

김경수 = 노 전 대통령 기억에 김 전 대통령과의 첫 대면은 1988년 국회의 5공 청문회 때다. 청문회를 마친 뒤 국회 식당에서 마주쳤다. 그때 김 전 대통령이 '노 의원,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하고 지나갔다고 한다.

최경환 = 가장 기억나는 게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때다. 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과 오찬 회동했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이튿날 강연하려고 광주에 가 있는데, 노 전 대통령이 바로 김 국장 전화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김경수 = 맞다. 제가 미리 전화했었다.

최경환 = 북의 핵실험에 대해 당황했는데 두 분은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해야 한다'고 협의를 마쳤다.

김경수 = 그때 노 전 대통령이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하다'고 통화를 시작했다. 전날 김영삼 대통령이 '사과하라' 그렇게 말씀한 것 때문이다.

최경환 = 김 전 대통령이 듣기가 힘들었을 거다. 노 전 대통령은 그래도 누구 편들기 어려워 아무 말 못한 게 죄송하다는 것이다.

김경수 = 그 뒤로는 전직 대통령 초빙 행사를 한번도 안했다.(웃음)

북 핵실험 직후 노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계승한 포용 정책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다 김 전 대통령과 협의 이후 포용정책 고수로 복귀했다.

최경환 = 2005년 이병완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그때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시대, 노무현 시대가 따로 있는 거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시대, '김·노 시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고 했다. 같이 협력하라는 거다. 한번은 노 전 대통령이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다가 "김 전 대통령은 정치 천재인줄 알았는데 정책의 천재더라. 뭘 해보려고 하면 김 전 대통령이 먼저 시작했거나 이미 제시했던 내용"이라고 했다. 한 기자가 그 내용을 메모해 e메일로 보내줬다. 그걸 프린트해서 김 전 대통령에게 드렸더니, 그걸 양복 안주머니에 1년 넘게 갖고 다니며 읽어보고 또 읽어봤다. 그리고 '최 비서관도 한번 읽어보세요'라고 종종 보여줬다. 아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갖고 다녔다.

김경수 =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이 만든 정책들의 기초만 잘 발전시키면 될 정도"라고 자주 말했다. 또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탁월한 정치인으로 평가하지만 지도자로 인정한 적은 없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지도자로 이름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경환 =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김 전 대통령이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한 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 2년 전 두 대통령이 타계한 그 때 어땠나.

최경환 = 노 전 대통령 돌아가신 다음날 김 전 대통령이 '빨리 가보라'고 해서 바로 내려갔다. 김 국장이 사저 끝에서 울고 있더라. 김 전 대통령이 영결식장에 갔는데 덕수궁 벽에 구급차를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2시간 동안 뙤약볕에 꼬박 앉아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김 전 대통령께서 마지막 37일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실 복도에 나와 훌쩍훌쩍 울면서 김 국장 생각 많이 나더라. '심정이 이랬겠구나'하고.

김경수 =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이 그럴 줄 정말 몰랐다.(울먹) 사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 다녀왔는데 변호인들이 '실제 증거가 없다'고 오히려 안심했다. 그런데 너무 수사가 길어지고, 주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또 진보의 미래 연구와 시민 민주주의 발전기여 등을 위해 필요한 도덕적 권위가 허물어졌다고 생각한 것 같다. 워낙 결벽한 분이라….

- 최근 야권 통합과 연대 논의가 활발하다. 두 전 대통령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최경환 =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병원 입원해서 중간에 잠깐 회복돼 호흡기를 입에서 뗐을 때 일성이 '단결하라'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단결하고 다른 야당들, 시민사회단체와 연합하라'는 것이다. 입원 전부터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링을 제각각 만들면 시선이 갈라진다. 하나의 링에 다 올라가서 경쟁하라'고 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할 것 같다.

김경수 = 노 전 대통령에게 '국민통합'이 중요한 화두였다. 대통령직 퇴임 뒤에 가끔 사람들이 찾아와 신당 이야기를 했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은 '신당이라는 게 쉽지도 않다'면서 사실상 부정적 입장이었다. 지금도 통합을 이뤄 한나라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최경환 = 요즘은 '김대중 리더십'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생들만 해도 김 전 대통령을 김구 선생 같은 왕할아버지라고 느낀다. 그래서 그의 리더십이 어떤지 알리고 있다. 복지 분야, 남북 협력 등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성과 중 하나가 진보진영의 정책적 결과를 많이 만들어놨다는 것도 알리고 있다. 물론 아직 과제가 많다. 대표적인 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방분권 같은 것이다.

김경수 = 노 전 대통령은 인터넷, 노사모 등을 통해 젊은층이 상대적으로 많이 기억하는 것 같다. 앞으로 민주정부 10년도 다시 평가받을 것이다. 국민들이 이제 스스로 삶 속에서 느끼고 있다고 본다.

최경환 = 두 전 대통령이 시대에 다리를 놓은 분이고 모두 '나를 밟고 가라'고 했다.

김경수 = 노 전 대통령이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 시대 막내 노릇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새 시대 맏형이 나오지 않겠나.

< 최우규·박홍두 기자 banc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