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1980년 5월 광주는 집단지성의 공동체였다

체 게바라 2011. 5. 28. 17:52

 

1980년 5월 광주는 집단지성의 공동체였다

 

 

“지난 18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세기 동안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통치능력을 보여준 두 개의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1871년 파리코뮌과 1980년의 광주민주화항쟁이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미국 웬트워스 공대 교수이며 전남대 5·18연구소 방문 교수의 주장이다.

  그의 주장을 수용하여 사회학자이자 출판인인 조정환 씨는 ‘공통도시’라는 책을 통해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지속된 광주민주화항쟁은 ‘다중의 제헌권력이 출현한 사건’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제헌권력이란 정치질서의 근본 규칙을 새로 만드는 권력을 의미한다. 기존체제기 붕괴했을 때, 제헌의회를 열어 헌법을 새로 제정하는 것을 떠올리면 제헌권력의 의미가 뚜렷해진다. 제헌권력이란 이렇게 기존 체제를 해체하여 새로운 체제를 만들고 새로운 규칙을 세우는 혁명적 권력이다. 5월 광주에서 이 제헌권력이 나타났다는 것인데, 그 권력의 주체를 그는 ‘다중’이라 명명한다. 네그리에 따르면 다중은 인민(people)과 대립한다. 인민은 국가주권을 구성하는 집합체이지만, 다중은 이 주권의 바깥에서 ‘집단지성으로 결합하는 창조적 무리’다. 그가 보기에 광주는 국가주권, 곧 계엄사령부가 폭도라고 규정하여 국가질서 바깥으로 축출한 ‘벌거벗은 목숨’들이 모여 새로운 자치질서를 만든 제헌권력의 출현 현장이었다.

 

그는 당시 광주를 둘러싸고 세 가지 권력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가 호헌파이고, 다른 하나는 개헌파이며, 세 번째가 바로 제헌파다. 호헌파는 유신폭압체제를 지키려 한 전두환 신군부를 가리키며, 개헌파는 유신폭압체제를 개혁하려 한 재야 민주파를 가리킨다. 1980년 초기 양상은 호헌파와 개헌파가 맞서 싸우는 모습으로 드러났는데, 5월 광주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호헌파의 공수부대가 물러난 뒤 5월 22일 지역의 유지, 지식인 중심으로 구성된 5.18 수습대책위원회가 이 개헌파의 논리를 뒤따랐다. 그는 이 수습위원회가 국가주권을 승인하고 그 아래서 계엄군의 선처와 관용에 호소하는 전략을 통해 사태를 수습해보려 했다고 지적한다. 개헌파의 이런 전략은 ‘거리의 다중들이 시민이 아니라 폭도이며, 그들의 행동이 저항이 아니라 난동이라는 ’주권의 지각양식‘을 정당화 해준다. 그리하여 수습위원회에 맞서 민주시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는데, 이들이 제헌권력을 떠맡게 된다.

 

새로 결성된 민주시민투쟁위원회를 이끈 것이 박남선, 윤상원 같은 ‘특이한 개인’들이었다. 골재 채취 차량 운전사였던 박남선은 200여명의 시민군을 조직한 뒤 시민군 상황실을 맡고 있었다. 학생운동 출신으로 ‘들불야학’을 이끌던 윤상원은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조직했다. “이 특이한 개인들의 활동이 시민군에 내재하던 제헌적 잠재력을 기폭시킴으로써, 광주의 ’폭도들‘은 호헌파에 맞설 힘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특히 주목한다. 23부터 매일 오후 2시 도청앞 광장에서 열린 이 대회는 ’시민들과 민중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면서 정치적 집단지성과 집단의지를 생산하는 다중 자치의 공간이 되었다.” 박남선이 지도한 시민군은 공동체를 수호하는 군사조직 구실을 했으며, 도청에 자리잡은 민주시민투쟁위원회는 일종의 ‘혁명적 자치부’의 성격을 띠었다.

 

그는 이 항쟁을 통해 주권체(국가)안에 갇혀 있던 민중이 주권체 바깥의 다중으로 바뀌어갔음을 강조한다. “광주의 다중들은 국가에 대한 모든 의무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투사가 된 이 다중들은 스스로 투쟁적 자치의 주체로 일어선다. 그는 이렇게 썼다. “광주에 투쟁과 삶의 공동체가 출현한 것은 다중이 자신들을 제헌적 주체성으로, 내전의 주체로 구축한 바로 이 순간이었다.”

 

그는 이렇게 5월 광주를 제헌권력이 출현한 사건으로 해석한 뒤, 5월의 그 제헌적 힘이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한 21세기 ‘지구제국’ 시대에 ‘제국 대 다중의 모습으로 확대되어 재출현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상력의 뒷받침을 받아 광주는 지구적 차원의 현재성을 얻는다. 그는 5월 광주의 ‘코뮌’이 전지구적인 ‘공통도시’의 원형이었다고 주장한다. 다중들이 꾸려가는 주체적이고 창조적이며 협력적인 삶이 함께 어우러지는 도시, 곧 다중들이 공통공간을 광주 코뮌이 선명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