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학자겸 번역가 이윤기 선생의 노무현론
어제의 영웅, 내일의 폭군
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정치적인 인물에 대한 관심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인물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 가는 양상이 신화적 영웅의 행적과 비슷해질 경우, 상황은 확 달라진다. 이 경우,
나는 쫓아다니면서 관찰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적 영웅 이야기는 ‘영웅 사이클’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패턴을 따른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에 고난을 당하고… 어느 날 문득 자기 존재의 본질을
만나게 되고… 구도(求道)의 길을 떠나게 되고… 신고만난(辛苦萬難) 끝에 뜻을 이루고… 자기 인생의
정점에서 슬픈 순교자가 되거나 오만한 폭군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치거나 한다는 것이다.
1992년 9월, 미국의 대통령 후보 빌 클린턴이 내가 머물고 있던 대학을 방문했을 때 나는 연설 현장에 있었다.
당시 민주당의 ‘여섯 도토리의 하나’로 불리던 무명의 클린턴 후보를 눈여겨보기로 한 것은 나와 연배가
비슷한 정치인이 획득하게 될 명목가치와 실질가치 사이의 차이, 그가 승리하는 순간부터 시작될 일대기의
전설화, 신화화의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중략)… 대학이 클린턴 후보를 맞느라고
술렁거리던 그해 가을, 환갑을 앞둔 한 정치학 교수로부터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대학원 시절, 유세장으로
들어가다가 한 신사의 발을 밟았는데 신사가 나보다 더 놀라면서 마구 사과하는 게 아니겠어요? 부스스한
머리 아래로 눈매가 지독하게 매운 전형적인 동부 신사, 나중에 알았는데 그 신사가 바로 그날 유세의
주인공 존 F. 케네디였어요…. 케네디가 섰던 시계탑 아래의 그 연단, 내일 바로 그 연단에 클린턴이 서지요.”
그 정치학 교수에게, 30여 년 전 자기에게 발을 밟힌 케네디는 이미 하나의 신화적 영웅이 되어 있는 듯했다.
나는 싸늘한 정치 이론가인데도 불구하고 케네디 평가에 자기 체험을 개입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그를
불공평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영웅 중에는 장차 순교자가 되는 긍정적인 영웅이 있고 장차 폭군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치거나 정점에서 파멸하는 부정적인 영웅이 있다. 조지프 캠벨 같은 신화학자는 ‘어제의 영웅이
오늘 자신을 십자가에 달지 못하면 내일은 폭군이 된다’는 무서운 소식을 전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영웅은
참 힘들겠다. 한 영웅이 자기 인생의 정점에 오르면 영웅 자신 아니면 그가 속해 있는 모둠살이 민중은
하나의 고질병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병명은 그리스 말로 ‘휘브리스’, 번역하면 ‘오만’이다. 캠벨은
영웅만 이 병을 앓는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민중도 이 병을 앓는 것 같다. 민중이 이 병에 걸리면
영웅은 순교자가 되고 영웅이 이 병에 걸리면 민중은 온갖 무리수가 다 동원되는 폭군의 폭정에 시달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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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정치에 관심이 적은 나도 한 정치인에게 휘둘렸다. 그가 하는 바보짓 때문에 골을 내었고
그 바보짓이 지어낸 변증법적 결론에 웃었다. 그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나는 표를 살그머니 다른 데로
돌리려고 했다. 그가 벼랑 끝에 몰리지 않았어도 거주지 경기 과천시에서 두 시간이나 떨어진 주소지까지
차를 몰고 달려가서 투표하기는 했을 것이지만 ‘노 일병 구하기 작전’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영웅의 고질병에 걸리면 나는 저항하겠지만 그가 아낌없이 몸을 내어놓으면 나는 내 몸으로써 그의 몸을
보호할 것이다. ‘영웅’은 제 손으로는 절대로 제 몸을 지키지 못한다.
-이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