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의 상징 봉하에서
나는 아직도 노무현의 죽음을 운명의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귀결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인 이 생명의 일회성에 대하여 나는 내 부모의 죽음보다도
더 그의 죽음에 대해 감당해 낼만한 의지도 마음의 힘이 없다.
나는 오늘 봉하에서 그의 부재가 던지는 죽음의 적막을 증인했다.
그와의 2001년 노하우와 이어진 노사모의 인연을 통해 그와 함께 꾸었던 꿈과 희망의
동시성이 소멸되는 것이 무섭고, 그리하여 그 대책 없는 적막이 더욱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 묻는다.
또한 수구권력과 수구언론에 묻는다.
우리는 이처럼 삶의 규율이나 법도를 모조리 부수어버리고,
생명의 권위와 존엄성과 경건성에 먹칠을 하고,
그의 진실한 삶의 모양들을 이토록 헝클어 놓아서 끝내 만족하신가?
그의 삶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순결성과 진정성을 이처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아서 시원하신가?
심하다. 시대의 이 무지몽매함이,
참으로 무섭다. 시대의 이 무자비하고 비열한 폭력이.
죽음이란 살아있는 인간의 사유가 언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불가피성의 영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와 의미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의 시간과 공간을 끝없이
긴장시키고, 우리의 삶과 운명 속에서 치열하게 작동되기를 다만 기도할 뿐이다.
또한 나는 세상에 묻는다.
노무현, 그가 민족과 민주주의, 인권을 사랑하는 방식은 그가 그의 앞에 놓였던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찬 현실을 날 몸으로 부딛쳐야 했던 그 방식에 대한
사랑까지도 포함해야 마땅하지 않느냐고.
그러므로 그가 정책적으로 실패했던 방식조차도 그 지향점이 결국은 민중과 민족을
향해 있었기에 우리를 더욱 숙연하게 만들고 그를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우리 잠시 두 눈을 감아 봅시다.
노무현을 떠올립시다.
그의 시대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노무현이 과연 시대를 규율하는 제도와 법의 보편적 가치를 뛰어넘는
초법적인 방법으로 이 시대와 사회를 바꾸고 개혁하려 했었는가를.
1970년 11월 13일 저 박정희의 폭압적 철권통치가 세상을 지배하던 질식할 것같은
시대에 청계시장 피복부 직공이었던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이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라고 외치며 죽어갔다.
그리고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유언한다. 전태일 열사는 기존의 법질서를
타도하여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고, 그가 목숨을 불태워가며 외친
것은 끝끝내 ‘준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곰곰이 돌아보면 노무현이 이 시대에 제기했던 그 모든 제안과 주장들은
신기하게도 현행의 법테두리 안에서 모두 가능했던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기존의
관행과 관습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졌기에 우습게도 그의 제안과 주장이 위법하거나
비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더욱이 기존의 지배 기득권층인 수구세력들은
노무현이 제기하는 사안마다 격렬히 반대했기에 그가 제안하는 지향점의 진정성이나
절차적 정당성은 헤아려 보지도 않고 시간의 역사 속으로 떠내려 보냈기에 많은 부분이
미완의 숙제로 우리에게 남겨졌다.
오늘 봉하를 다녀오면서 내가 가슴에 새기는 것은, 살아있는 내가 삶- 저 너머의
세계인 죽음을 말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나의 실존을 배반하는 일이기에 조심스럽기만
하지만, 죽음이란 살아있는 인간의 사유와 언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결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성의 영역임을 인정하고 동의하는 것이지만,
나는 오늘 감히 노무현의 죽음, 그 너머를 입에 담고자 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일상의 삶 속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서 희망을 발견하자.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 벌고, 열심히 살아가자. 삶의 이런 단순하고 단단한
형이하하적 기반 하에서 노무현정신의 가치와 의미를 승화시켜 그것이 나를 넘어
우리로 치환되어 현실 속에서 시퍼렇게 투영되도록 실천하자.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삶을 끝없이 각성시켜서
우리의 운명 속에 노무현정신이 치열하게 작동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자.
2009년 7월 5일
노무현대통령 서거 44일째 날,
봉하마을 생태공원 야생화 이식 작업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