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노무현앞에서 누가 화해와 용서를 말하는가

체 게바라 2009. 6. 3. 16:25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일정이 끝나고 조문 정국도 마무리된 지금, 분노와 슬픔으로 점철됐던 민심의 향배에 청와대, 정치권, 언론들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폭발직전에 있는 감정들을 공권력의 이름으로 간신히 누르고 있지만,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을 털고 지나가기엔 떠나간 이름 석 자에 국민들이 흘린 눈물과 곡소리가 너무나 크고 무겁게 다가오죠. 그 울분의 손가락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이 비극에 책임을 나눠 가지고 있는 이들은 전부 납작 엎드리고 있습니다. 개미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늘 그래왔듯이 화해와 국민통합을 외치면서 말이죠.


옳습니다. 이 비극적이고 참담한 사건을 빌미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나 명성을 취하려 해서도, 분열과 폭력을 부추기며 고인의 명예를 훼손해서도 안 됩니다. 경제적, 군사적 위기가 국내외를 둘러싸고 있는 실정에서 혼란과 분열이 가중되어서도 안 될 일이죠. 가시면서 남기신 유언처럼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조용히 그분 평생의 바람이었던 통합과 화합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진정 그 뜻을 기리고 따르는 것 일거에요. 하지만, 우리가 왜 이 용서와 국민화합의 말을 가해자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하나요. 정작 상처받고 아파하는 유족들과 그를 따르던 친구, 수족과 같던 동지들, 무엇보다도 애통의 눈물을 흘렸던 국민들은 여전히 이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면목으로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뻔뻔하게 화합과 용서를 말한단 말인가요.


하긴, 그리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풍경입니다. 친일파 숙청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도, 군부 독재 아래서 수많은 생명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다 희생되었을 때도, 권력과 금권의 폭력과 불평등으로 약한 이들이 눈물로 돌아서야 했었을 때도, 지난일은 다 잊고 이젠 화해하자고 넉살좋게 손을 내밀며 자신의 과오는 모른 척 해왔었으니까요. 합당한 사과와 보상, 재발 방지를 외치는 울부짖음은 사회 분란을 일으키는 폭력 분자이자 순진한 민중을 선동하는 검은 배후로 지목받고, 정작 피해자들은 생각도 없는 화해와 화합을 억지로 포장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지나갔던 것이 어디 한두 번 있었던 일인가요. 피해자는 더욱 몸을 사리고 가해자들만 떵떵거리는 세상, 일을 저지른 사람이 왜 다 지난 일을 들쑤셔 일을 만드냐고 소리치는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이 걸어왔던 부끄러운 역사의 한 단면이자, 아직까지도 자행되고 있는 서글픈 풍경입니다.


 

노무현의 평생 목표 역시 국민통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다른 이들보다 깊은 울림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지역주의라는 분열과 반목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며 용서와 화해를 부르짖을 권리와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비록, 시대의 한계와 그를 둘러싼 거대한 반발, 그리고 안타깝지만 그 꿈이 비록 그의 임기 내에 달성하지 못한 목표였다 해도, 그의 뜻과 노력, 헌신만큼은 정당하고 고귀한 것이었습니다. 광장에서 울려 퍼지던 그를 기억하겠다는 수많은 이들의 외침은 바로 그의 좌절된 꿈과 이상, 그리고 이를 위해 헌신했던 그의 삶에 대한 대중들의 애정과 지지를 담은 목소리입니다. 이 거대한 함성 앞에서 다시 또 가해자들이 은근슬쩍 꺼내려하는 거짓 화해와 용서의 손짓은 무의미할 뿐이에요.


진정한 용서와 화해, 하나 된 국민을 원한다면 의당 그에 합당한 진솔한 사과와 책임 규명, 그리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대책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아픔을 던져준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마땅히 감당해야 할 잘못의 대가를 치룬 후에, 피해자들의 선처와 용서를 구하는 것일 뿐이에요. 아직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흘러내린 핏줄기가 미쳐 마르지도 않았는데 무슨 염치로 화해하자며 지난 일을 묻어두려 하는 것인가요. 이번에도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며 이리저리 피하면서 어물쩍 버티다보면 곧 분노의 유효기간이 끝나버리겠지 라며 지나가 버린다면, 그리고 국민들 역시 이런 얄팍한 수에 못 이긴 척 넘어가준다면 우린 머지않아 또 다른 비극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누가 감히 어떠한 대가도, 책임도 없이 노무현의 이름 앞에서 그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국민들 앞에서 화해와 용서를 말한단 말입니까. 복수와 보복의 잔혹한 이름이 나오기 전에, 어서 그 화해와 화합의 가식적인 허울을 거두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