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띄우는 편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명치끝이 아려오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신기루처럼 잡혀지지 않는 꿈과 희망을 쫒아 얼마나 종종걸음을 쳐댔던가요? 허둥지둥 자신의 삶의 무게를 어쩌지 못하는 고단한 삶에 부대껴 살아온 회한 없는 삶이 있으랴만 어느덧 형님이나 저나 추억을 먹고사는 나이가 되어버린, 그래서 우리들의 얼굴에서도 청춘을 함부로 낭비한 그 세월의 잔재가 묻어나옵니다. 그렇지만 겨울 내 꽃나무는 꽃이 져도 꽃나무이며, 과일나무는 수확의 한 철이 지나 벌거숭이가 되어도 과일나무였습니다. 돌아보면 달랑 내 몫이라고는 종이 한 접시뿐이었지만, 그런 삶도 가끔은 천둥치는 두근거림과 설렘임의 울림을 들려주곤 했었습니다.
형님,
생의 한 때, 저는 저 스스로 제 운명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시절, 나는 운명 앞에 부끄럽지도, 두렵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지독한 외로움에 몸을 떨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형님이나 저나 젊은 한 시절의 열정이 사라진 황혼의 석양이 밀려오는 저녁 무렵이 되어 버렸고, 그 내면은 마치 꽃이 다 져버린 폐허 같은 정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그 폐허의 그 정원에도 눈 내리고, 소쩍새 울고, 꽃들도 피어나 비루한 삶을 살았던 우리들에게 작은 위안을 줍니다. 마치, 우리들 고향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고향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누군가 제게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 삶을 다시 돌리고 싶을 만큼 후회하지 않는다고, 비록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기준으로는 결코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내가 살아온 길을 사랑한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망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릴지라도, 형님과 저는 함께 한수라는 고향의 인연으로 맺어진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어찌 제가 세월에 모든 것들이 잊혀져간다 할지라도 내 삶의 전부였던 그토록 소중한 인연의 고향과 형님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형님,
형님께서도 마찬가지시겠지만, 저의 아이들에게서 아빠가 태어나 사시던 곳을 보고 싶다고,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가끔씩 듣습니다. 그러나 삶에 바빠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던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 머리에서도 하얀 서리가 내려 우리들 삶의 뿌리였던 고향을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하건만 우리 아버지들이 그랬고 우리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고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지난 시절을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권력의 필요에 따라 송두리째 고향을 물속에 묻어 버리고, 뿌리 없는 실향민들이나 부초들처럼 고향도 없이 허공을 맴도는 신세들이 된지도 벌써 30여년이 되어갑니다. 순박했던 우리 선배 세대들께서는 권력이 시키는 대로 아무런 저항이나 요구도 하지 못하고, 몇 푼의 보상금을 쥐고서는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들이 대를 이어 일구고 가꾸며 살던, 그 삶의 뿌리를 깊이 내렸던 대지를 뒤로 하고 마치 점령군에게 투항하고 쫓겨나듯 고향을 등졌습니다.
형님,
고향의 대지는 우리들의 모태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태어났고, 그곳에서 우리는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이제라도 고향을 되찾는 일은 형님과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요? 우리들 삶의 뿌리였던 고향이 보이는 곳에, 언제라도 고향이 생각나면 달려가 볼 수 있는 곳에, ‘고향의 동산’이나, ‘망향의 동산’을 만드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더 중하고 급한 일이 아닐까요? 그 일이야말로 수많은 세대를 이어 사시던 선대들을 위해 우리들이 반드시 해내야하는 의무이며, 작은 보답이라는 저의 생각에 형님께서도 흔쾌히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어머니의 모태인 고향에서 태어나 망망대해에 나가 살다가, 결국은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와 자신의 자식에게 고향을 넘겨주고 생을 마감하는 연어들처럼, 우리들도 고향을 잊고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향이란 우리들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동시에 우리를 만들어낸 정체성의 근본이기에 저는 오늘 더욱 우리들의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그럼 형님, 고향에서 다시 만나 뵐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