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 미래를 말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현재 한국 경제가 아주 나빠지고 있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듯하다.
경제전문가는 물론이고 일반 국민 모두가 그렇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진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경제대통령' 한가지 컨셉으로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던가.
그런데 집권하자마자 한국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있으니.
필자 주변의 한나라당 지지자 혹은 보수세력 추종자들에게 현재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넌즈시 물어보면 그들의 대답은 이렇다.
"이게 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어 논 문제가 쌓여서 이렇게 된 거다"
그럼 그렇지! 저들이 누구인가! 누가 수구 꼴 보수 아니랠까봐!
조.중.동 보수 언론은 한결같이 세계경제가 나빠서라고 둘러대고, 저들은 (꼴 보수) 참여정부 탓이라
한다. 도무지 한국사회가 처한 위기에 대한 올바른 분석과 진단 부재에 책임의식이라고는 없는
부류들이다.
고유가 문제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고, 이미 곳곳에서 징후가 있었다.
세계경제 사정이 어떻든간에 경제문제 만큼은 자신만만했으니 능력을 발휘해야 '경제대통령'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승리 직후 증권거래소를 방문하여 이렇게 큰 소리 쳤다.
"올 주가지수 3000p 돌파하게 될 것"
그런데 지금은 그가 진정한 허풍선이였음이 드러났다.
폴 크루그먼은 96년초 발표한 어느 기고문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에서 대 기업 현장 경험과 국가경영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폴 크루그먼 교수의 신작이 4년만에 출간되었다. 어느 광고에서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 소식을 접했는데, 제목만으로는 그가 미래서 혹은 미래생활에 관한 저서를 펴냈나 싶었다.
폴 크루그먼은 이 시대 최고의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미래경제학에 관련된 책? 궁금증을 안고 서점으로 갔더니 경제학 코너에 있는게 아니라
짐작대로 '미래서'코너에 그것도 엘빈 토플러 <부의 미래> 옆에 떡하니 진열되어 있었다.
아마도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었던 거 같다. 경제학 서적은 딱딱하고 대중성이 떨어지는 점이 있으니.
책을 집어들고 적당한 자리를 물색하여 읽기 시작했다. (대형서점은 아예 책읽는 부스가 따로 마련되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원제 The Conscience of a Liberal , 경제분석 보다 정치문제에 대한 언급부분이 훨씬 많았다.
경제와 정치 두 부문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관계를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 빼어난 글솜씨로 보여 준다.
필자는 크루그먼의 문체를 좋아한다. 언제나 논리가 명쾌하고 글 속엔 에스프리가 넘쳐나며 우아한 문장력을 가졌다. 학자가 범하기 쉬운 지적오만함 따위는 없다. 제 아무리 경제.정치에 대해 몰라도 누구나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쓴다. 더구나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주의자가 아닌가.
"나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그리고 법치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진보주의자이며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필자는 <미래를 말하다> 중간 쯤에서 이 구절을 읽으며 눈물이 핑돌 만큼 크루그먼에게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다.
이 책은 미국경제와 정치문제에 촛점을 맞추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 세계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 정치.경제는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는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보여준 미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차이점은 고스란히 우리나라 정치판에도 투영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의원 거의 대부분이 미국 숭배자, 미 사대주의자로 채워져 있다. 그것도 미 공화당 정책과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 들이는. 폴 크루그먼은 이 책에서 '정치적 양극화'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 정치인이 좌나 우의 극단으로 치달음을 지적한다. 우리나라 정치계도 놀랄만큼 빼다박았음을 발견하고는 크게 공감하였다. 미 공화당이 확실히 더 우파적인 성향을 띠게 된 것은 1980년대 부터이며 정치적 양극화 현상을 증명하는 자료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공화당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소득불평등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골수 우파세력(공화당)은 부자들의 세금을 대폭 줄였고, 그 밖의 여러방법으로 불평등 확대를 초래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계층 간 수입의 불평등 근본원인은 정치적 양국화에서 기인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1970년대 초반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며 정치적 양극화가 먼저 이루어졌고 경제적 불평등이 그 뒤를 따랐다 한다. 크루그먼은 이 책에서 미 보수주의 네트워크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그는 보수주의 운동을 이끄는 힘은 바로 '돈'이라고 한다. 미 보수주의 네트워크 - 공화당,공화당 소속 정치인, 언론그룹 싱크탱크,출판사 등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부유층이 설립한 보주주의 재단과 기업으로 부터 상당한 돈과 연구비를 받아 정해진 틀에 맞는 연구결과만 발표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우리나라 보수진영의 네트워크를 한번 되집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한 두군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은 국민 대다수가 민간 의료보험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다. 의료보험을 전 국민에게 보장하지 않는 유일한 경제선진국인데, 여기엔 미국의 원죄인 노예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빌 클린턴의 '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 실패는 보수주의 운동의 강경한 반대때문이었는데 클린턴 법안을 '죽여야 한다'는 공화당의 전략지침서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고 말한다. 클린턴 의료개혁안이 통과되면 복지국가 정책이 탄생하게 될까봐서 였다. 필자가 어디서 본 자료에 의하면 유럽 여러국가의 복지지출 예산은 40~50%인데 비해 미국은 20%가 채 안된다고 하니 미국이란 나라의 현주소가 어떤지 짐작이 간다. 크루그먼은 '케인즈 주의자'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사회안전망 확충과 국민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을 주장한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강조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철학과 일치한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새로운 뉴딜정책을 펴야한다고 주장한다. 크루그먼은 이 책에서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고 동시에 민주당이 의회에서 공화당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도록 다수당이 되기를 바란다. 왜냐면 ,진보주의 운동의 안건이 입법화되는 유일한 길이니까. "지금 실천하는 진보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진보주의 운동가가 된다는 것이고,진보주의 운동가가 된다는 것은 당파성을 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종목표는 일당독재가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있는,자유로운 경쟁에 의한 민주주의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결국 진보주의자가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 필자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현 상황을 생각하였고, 진보진영이 나아갈 길이 어떤 것인지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이 행정권력.의회권력.지방자치권력 모두 장악하고 이 숨막히는 현실에서 이제는 우리의 진보진영도 돌파구를 찾아야 할 시점이 온 것이라 생각한다. 미 공화당은 '진보주의'란 단어를 경멸하게 만드는데 성공하였던바, 이는 우리나라 정치현실과 흡사한 면이 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보수진영으로 부터 당한 수모를 돌아보라. <미래를 말하다>에서 폴 크루그먼이 어떤 미래를 말하고 있는지 그 의미를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주의 운동은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 집단에게 해가 되는 정책을 뒤집는 근본적인 반민주적인 목표를 추구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니 2008년 미 대선은 평등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진보적인 정치인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이다. 크루그먼은 이 책에서 걱정거리 한가지를 드러내고 있는데 바로 공화당의 일관된 전략인 '투표를 막아라'이다. 민주당에게 투표할만한 유권자,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투표를 막기위해 무슨 방법이든 가리지 않는다면서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기계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에게 이 책은 아마도 화를 돋우는 책일 것이다. 미 공화당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여기고 맹목적으로 따르고 모방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심통이 나겠지만, 필자에게 이 책은 속이 다 후련하다. 폴 크루그먼, 당신은 나의 동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