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거리에서 싸우던 나날(1960년대의 자서전)
거리에서 싸우던 나날 (부제 : 1960년대의 자서전)
올해는 서구사회를 격렬하게 뒤흔들었던 68혁명 40주년이 되는 해다. 혁명의 불꽃은 프랑스 대학생 8명이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항의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파리 사무실을 습격하면서 발화되었다. 이어진 대규모 학생 시위, 대학점거와 패쇄, 그리고 노동자 총파업이 가세하면서 1968년 5월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드골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하는 극단적인 처방으로 대처했다. 총선에서 드골 정권이 압승하고 혁명의 불길은 수그러들었지만 이듬해 드골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혁명의 불씨는 유럽 전역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옮겨 붙었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그리고 태평양을 넘어 일본으로 번졌다.
서구의 현대사는 68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68혁명의 몫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68혁명은 당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던 모든 금기에 도전한 정치 전복이자 문화 봉기였다. 혁명의 주체인 젊은 세대는 관용이 존중되는 사회, 차별이 사라진 사회, 성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된 사회를 요구했다. 어떤 의미에서 1968년)라고 하는 것이 정화의 목소리는 불가능을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68혁명만큼 그 평가가 극단적인 것도 없어 보인다. ‘68혁명은 청산되어야 한다’를 강변하는 편이 있는가 하면, ‘68년은 가능성이다’를 항변하는 편이 있으니 말이다. 68년의 실체를 노동의 폄하, 권위의 실종, 폭력의 용인으로 규정하는 니콜라 사르코지 현 프랑스 대통령이 대표적인 비판의 신봉자다. 그는 프랑스인들이 1968년 5월의 정신, 행동, 이념과 단절할 것을 강력하게 제안한다. 그리고 자신이 68년의 관에 마지막 못질을 할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타리크 알리, 사르코지의 적수로 손색이 없다. 알리는 제3세계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으로서 60년대의 현장을 몸으로 부딪치고 당시의 열정과 희망을 전파하는 길로 나선 것이다. 열정과 희망을 되새기고 되살리기 위해 거리에서 싸우던 나날을 기억하고 기록으로 내놓았다. 그의 이 저서(거리에서 싸우던 나날, Street Fighting Years)에는 한 진보 지식인의 행로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은 60년대 비판적 지성의 야사(野史)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68년에 대한 기억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누구도 1960년대의 모습을 타리크 알리만큼 생생하게 기억해 내지 못할 것이다. 한 개인의 행로가 책의 소재이지만 다루고 있는 시간의 폭은 대단히 넓으며, 공간의 범위는 세계를 단위로 하고 있다. 68년의 혁명을 세계체제의 긴 호흡 속에서 그 원인과 모순을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68혁명은 어느 날 우연하게 특정의 역사상황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책의 줄거리는 자신의 고국인 파키스탄에서 런던, 프라하, 그리고 하노이, 볼리비아 등으로 누비며 다녔던 진보 지성의 발걸음으로 구성된다. 이야기는 타리크 알 리가 다섯 살이던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다섯 살 나이에 노동절 행사에 참석하여 중국 혁명의 승리 소식을 접하고 붉은 깃발이 물결치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파키스탄에서의 학생운동을 접고는 영국의 옥스퍼드로 옮기고, 비록 하룻밤이었기는 하지만 이때 말콤 X를 만나 정치와 종교를 논의하는 행운도 잡는다. TV로 방송된 옥스퍼드 대 하버드 토론에서 베트남 전쟁을 놓고 키신저와 논쟁도 했다. 알리의 토론에 감명을 받은 영화배우 말론 브랜드로부터 뜻밖의 만나자는 전화를 받기도 한다. 또한 당대 최고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의 눈에 들어 함께 일을 한다. 1967년부터 알리의 삶에도 긴장감이 돈다. 그의 사무실은 세계 도처의 혁명가들이 들리는 정박지 혹은 사랑방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68년으로 다가갔다.
자서전에 대한 논평은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니다. 내가 본 대부분의 자서전은 윷판의 모 아니면 도가 훨씬 많았다. 읽고 나면 하나같이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는 질문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자서전이란 글줄이나 읽은 사람에게는 별반 인기 없는 장르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책장을 넘기면서 오히려 저자인 타리크 알리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타리크 알리의 자서전이 아니라 1960년대의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형식은 분명 알리의 일기이자 기행이었지만 내용은 1960년대다. 1960년대가 주인공이며, 저자인 알리는 그 주인공에게 소재를 제공하는 정도로 자리매김 되었다. 역사에서 은폐된 것들, 그리고 역사에서 복원되어야 할 것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68혁명 역시 ‘혁명은 실패한다’는 일반 명제에서 예외일 수는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20세기 인류문화의 근본을 바꾼 대서사이자 대장정이다. 40여년 전의 사건이 여전히 현실 정치의 준거가 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상황은 한 때 매력적인 선택으로 보였던 사회민주주의가 더 이상 발 못 붙이게 돌아간다. 정치는 희화화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간다. 냉담한 반응이 제도화된 지 제법 오래 됐다. 극심한 투표율 저조가 이를 반증한다.
한국사회로 눈을 돌려 보면 68세대를 참여정부의 중심 세력이었던 386세대와 어설프게 비교한다거나, 맹목적인 모방으로 68혁명의 메시지를 탐닉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어느 쪽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비록 68혁명은 역사의 실패로 끝났지만 역사의 반향으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자유와 자율의 바람을 불어넣고 정의와 평등을 꿈꾸고, 연대와 자유의 욕망을 갖는 것이 게으른 환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빛 바랜 사진첩에 들어있는 흔적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68혁명은 정체성의 혁명이었다.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 많은 혁명 중에 68혁명만큼 내가 누구인가를, 우리가 누구인가를 진속하게 물었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그러한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거침없는 대답이 담겨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박길성- 타리크 알리 지음/안효상 옮김/책과 함께/6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