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패러다임은 어떤 이데올로기일까?
세계사를 보는 눈, ‘역사유물론’
최근 영국인의 여론조사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마르크스가 꼽혔다고
한다. 이 마르크스의 핵심사상의 하나인 ‘역사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은
바로 세계사를 보는 눈이다. ‘반야심경’이 석가모니의 사상을 압축된 형태로 옮겨
놓았듯이 다음의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에 나오는 몇 구절은 그의
역사유물론의 핵심 교리이다.
1.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는 독립된 특징의 생산관계 속에 편입된다. 생산관계는
물질적 생산력의 특정 발전 단계와 조응한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형성하고, 이 경제구조 위에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며(교육,
예술, 종교, 윤리 등) 특정 형태의 사회의식들이 이 상부구조에 조응한다. 물질생활의
생산양식은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활동 전반의 성격을 결정한다. 인간의 의식이
자신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자신의 의식을
결정한다.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다. 생활 수단을 만드는 생산 활동은 역사의 대전제가 된다.
석기에 의존하던 기나긴 채집과 수렵의 시대가 가고 유목과 농경의 시대가 개시되면서
인간의 삶에는 여러 가지 직업의 분화가 나타났다. 아주 더딘 속도로 공동체는 계급으로
분열되어 갔다. 종교와 정치를 담당하던 자들이 사회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었고,
공동체의 유지를 위하여 거둬들이던 부역과 공물이 지배자의 전유물로 바뀌어 갔다.
종족간의 전쟁은 계급사회의 형성을 가속화했다. 종족 내의 채무자와 종족 밖의 포로가
생산 활동의 가장 낮은 지위인 노예로 전락했다. 모든 고대 국가가 광범위한 노예층을
거느렸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후 역사는 고대의 노예제적 생산관계와 중세의
농노적 생산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만일 내가 1000년 전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편입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경제적 시대를 구별하는 것은 무엇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어떠한 노동
수단으로 생산되는가의 문제이다. 무명옷이나 비단옷이냐에 의해 경제적 시대가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옷을 어떻게 생산하느냐, 물레로 만드느냐 방직기로 만드느냐에
따라 경제적 시대가 달라진다. 노동수단은 인간 노동력 발달의 척도일 뿐 아니라 노동자가
맺는 사회적 관계의 지표이기도 하다. 봉건적 생산관계는 물레에 조응하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방직기에 조응한다. 특정의 생산력에 조응하는 특정의 생상관계가 결합되면,
이것이 사회적 물질적 기초인 경제구조를 이룬다. 이제 이 경제구조를 토대로 기둥과
들보가 올라간다. 기둥과 들보는 소유관계를 공고히 해주는 법적, 정치적 제도들이다.
<경국대전>은 조선의 양반이 종에 대한 지배, 그들의 소유관계를 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법적, 물리적 강제만으로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붕에 기와를 얹듯
생산관계와 지배 구조를 장식해줄 이데올로기적 예술품이 필요하다. 이 이데올로기적
예술품은 건축물의 내구성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한다. 중세 유럽의
귀족은 기독교로부터 종교적 지원을 받았으며 조선의 양반은 성리학으로부터 이데올로기적
장식물을 공급받았다.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노예를 ‘말하는 짐승’
으로 인식했던 것은 그가 타고난 불평등 옹호자였기 때문도, 그의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그리스 사회가 노예노동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의식이 노예의 의식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이 노예의 인격을 부정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식이 사회적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온당한 것이다.
중세의 농민들은 삼중의 부담을 지고 살았다. 왕실에 인두세와 20분의 1세를 납부했으며,
걸핏하면 도로 공사와 부역을 떠맡았다. 그리고 나면 또 성직자들에게 10분의 1세를
물었다. 또한 농민은 밀, 호밀, 귀리, 보리를 바쳤으며 양과 돼지, 닭 등을 바쳤다.
마지막으로 영주에게 농민들은 보유지에 대한 연공을 납부했다. 영주는 재판권을 행사하며
농민들을 수탈했을 뿐 아니라 제분기, 포도 압축기, 빵 굽는 솥 등 공동으로 시용하는
시설의 이용료를 부과했다. 평상적인 시기에 자신의 자작지에 의지하여 빠듯하게 생활하던
일반 농민들은 경제 위기가 닥치자 봉건적 부과를 납부하느라 자신의 수확을 다 빼앗기고
나면 도리어 곡식을 비싼 값으로 사 먹지 않을 수 없었다. 1788~1789년은 바로 위기의
시기였다. 농민들은 영주에 대한 증오를 진정할 수 없었다. 가장 큰 부담이었던 봉건적
부과세와 십일조는 과중하고 굴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왜 납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2. 기존의 생산관계는 생산력을 구속하는 질곡으로 변한다. 이리하여 사회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초가 변하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재빨리 변혁된다. 어떠한 사회
구성체도 생산력이 그 안에서 발전할 여지가 있는 한, 결코 사멸하지 않으며, 보다 높은
새로운 생산관계는, 낡은 사회의 태내에서 새로운 물질적 조건들이 성숙하기 이전에는
출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류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자기에게 제기한다.
“2000만 농민의 가슴 위에 무겁게 짓눌린 오랜 압제, 이것이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다.
왕비의 허영, 철학자의 궤변도, 장사치의 이기심도 아니다.“라고 카알라일이 말했을 때,
그는 사회혁명의 시기에 직면한 프랑스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영국의 존 로크가 자유권,
생명권, 소유권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자연권이며, 이를 보장하지 못하는 정부는
전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는 사회혁명의 시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로크에게 봉건적
생산양식이 낡았듯이 그에 상응하는 전제 군주제도도 낡은 것이었다. 봉건적 생산양식
속에서 태어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충분히 물질적 힘을 확보하자,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가차 없이 낡은 것, 봉건적인 것을 지탱하는 마지막 기둥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련의
몰락과 함께 마르크스의 사상도 몰락한 것으로 간주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은 일본인 특유의 경박함을 과시한 것이다. 인간 사회가 <모순>을 안고 있는 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저항과 실천은 계속되는 것이고, 역사도 계속되는 것이다. 생산력이
발달할수록 자본주의의 모순은 심화된다. 따라서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릴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이론이 비록 부분적으로 현대에 들어
현실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과오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 사회의 제도와 구조가 다중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한, 생산력의 증가를 위한 각종의 이론과 설비 등이 기승을 부릴수록 드러나는
자본의 모순으로 인해 인간과 대중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과거의 유물로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이 아니라, 언제나 자본주의의 모순의 대척점에 우뚝서는 살아있는 사상인 것이다.
소련의 몰락은 자본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역사유물론’의 충실한 자기실현
이었다. 1920년대의 소련은 사회주의 사회로 갈 수 있는 물질적 전제가 마련되지 않은
사회였다. 중세의 봉건적 구체제를 타파하고, 이제 막 근대적 세계로 진입하려던,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된 사회였다. 레닌이 분석했듯이 혁명 후 러시아는 여전히
가부장적 소농 생산이 지배하는 경제체제였다. 몰락한 것은 마르크스시즘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로 갈 수 있다고 판단한 혁명가들의 환상과 조바심,
그리고 이를 집약한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론이었다.
지금은 정보화, 자동화가 만개한 시기, 이것들이야말로 사회주의 사회를 요청하는 물질적
전제들이라 생각한다. 농업이 중세적 생산관계를 요청하는 생산력이었다면, 공업은
근대적 생산관계를 요청하는 생산력이었다. 공장제 수공업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탄생케 했고, 기계적 대공업이 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제공하였다. 앨빈 토플러가
말하는 굴뚝공장의 소멸은 바로 근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사멸을 예고한다. 동시에
정보화와 자동화는 이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대체하는 새로운 생산관계의 출현을
요청하는 역사적 징후이다. 그것은 21세기는 자본주의의 강 언덕에서 사회주의의 강 언덕으로
건너는 뗏목을 띄울 시기라는 조짐인 것이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은 인류에게 새로운 과제를 제기한다. 더불어 인류는 역사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자신에게 제기해 왔다.